기고/나누어야 힘이 생긴다

종종 행정기관을 공룡에 비유하기도 한다. 너무 비대해진 제 몸을 가누지 못해 멸종한 그 공룡 말이다. 덩치만 크고 걸리적거리기만 하는 이 거대조직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공룡을 죽게 한 그 증후군이 결코 중생대의 그것들만의 운명일 뿐이라고 안심해도 될 것인가? 오늘, 우리의 직장은 어떠한가.

나는 조직을 경직시키고 구성원의 숨통을 죄고 있지는 않은가. 법이니, 명령이니, 비밀이니, 규제니 하면서 사람과 일을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직위만 내세워서 통제하고 간섭하지는 않는가. 나혼자서 정보를 독식하거나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조직이 비대하고 경직되고 타성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비대조직에서는 정보가 어느 일부의 전유물이 되기 쉽다. 의사소통 구조가 일방적이 되기 쉽다. 피가 돌지 않는다. 피가 돌지 않으면 죽는다. 심장에서 머리로, 손으로, 다리로 피가 돌아야 하는데 어느 지점에서 막혀버리면 ‘악’하고 비명 한번 제대로 지르지도 못하고 죽는다. 상사는 심장부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피를 돌게 하는 사람이다. 막힌 것을 뚫어 조직이 잘 돌아가게 하는 사람이다. 정보를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권한과 책임을 나누고, 일을 나누고, 결정과 행복을 나누는 사람이다. 공유하고 공유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특히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자기 혼자서 정보를 독점하거나 의사소통의 통로를 막아서는 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 마음과 지혜를 모을 수 있는 사람에게 사람들이 모이고 가치가 창출된다. 창의성에 관한 연구들을 보라. 창의적인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아낌과 보살핌,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지지하는 인간적인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십여년 전 필자가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시절의 일이다. 지금은 모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분인데 사실 필자와 알던 사이도 아니었다. 그분도 박사과정에 재학하고 있었고 어느날 학회에서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눈 인연일 뿐이었는데 그분이 선선히 나를 도와준 것이다. 그분은 석사과정 때부터 박사과정을 대비하여 그 분야의 좋은 논문들을 많이 수집해 놓고 있었다.

나는 사실 학문에 뜻이 있어서 박사과정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학문을 할 만큼 논리적인 두뇌를 갖고 있지도 않아서 과정 중에도 마음이 괴로운 날들이 많았다. ‘그만둘까, 어쩔까. 너 같은게 뭐 학문을 한다고. 순수하지도 못하고 기본능력도 학문에 대한 외경심도 없는 것이…’ 해가면서 회의와 연민, 自嘲와 죄책감에 시달리곤 하였다.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모르겠다.

그분이 어렵게 모은 자료들(그 당시에는 미국 논문을 한편 들여오려고 하면 배로 6개월 정도가 걸렸음)을 선뜻 빌려주면서 같은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니 무척 반갑다고 하였다.(필자가 진로교육 국내박사 1호니까). 그 후로 서로 정보와 자료를 교환하면서(실은 일방적으로 받기만 한 셈이지만) 참 좋은 시간들을 나누었다.

내가 그분으로부터 얻은 것은 귀한 자료만이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값진 것은 나누는 것이었다. 베푸는 것이었다. 먼저 내주는 것. 자기가 가진 소중한 것을 상대를 믿고 먼저 주는 것, 그런 마음과 행동이 아닌가 한다. 나도 그분을 닮아 후배들에게 내가 어렵게 구한 자료들을 선뜻 내주곤 한다. 정보와 자료를 나누게 한다. 그렇게 해야 힘(power)이 생기고 학파가 형성되는 것이다.

좋은 자료를 자기만 꽁꽁 싸갖고 있으면 힘이 생기지 않는 법이다. 다른 사람의 머리로 가면 훨씬 가치있는 보석으로 다듬어질 수 있는 자료들이 옹졸한 두뇌의 소유자에게 들어가면 빛을 보지 못한다. 글쎄 고작해야 그 사람에게 강사료나 원고료 정도 벌어다줄지는 모르겠지만. 나누어야 힘이 생긴다.

/김현옥.수원 수일중 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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