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중국 탐방기

지난 주 3박4일의 일정으로 백두산과 중국의 연태시를 다녀왔다. 지난 97년 상해 방문 이후 실로 7년만의 방문이다. 요즈음의 중국의 변화 속도를 생각한다면 너무 오랫만의 여행이 아닐 수 없다.

먼저 백두산에 올랐다. 한나라당 의원 20명이 방문해서인지 중국 공안이 연길공항에서부터 그곳을 떠날 때까지 에스코트를 했다. 내심 뿌듯했다. 의원 신분으로는 첫 외국 방문인 나로서는 그들의 호위가 싫지 않았다. 그러나 백두산 천지에 오르는 순간 그러한 나의 생각이 참으로 순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호위의 목적이 아니라 감시의 목적으로 우리를 따라다닌 것이다. 우리가 백두산 천지에서 ‘한민족 통일을 위한 백두산 기원제’라는 현수막을 펼치려하자 그것을 빼앗아 버렸다. 아마도 고구려사 문제와도 맞물려 더 민감하게 감시하는 것은 아닌지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천지에 오른 날 날씨가 유난히도 맑아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중국의 강택민도 3번 올랐는데 날씨가 불순해 천지를 한번도 제대로 보지 못했단다. 그렇게 백두산은 멀어져 갔다.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산동성의 연태라는 도시다. 이미 크고 작은 우리 기업이 천여개가 진출해 있었다. 대우중공업이 대표적 기업이었다. 현지 공장 총책임자는 만약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을 한다면 과연 자신들이 1위를 차지할 수 있겠느냐는 말로서 한국에서의 공장경영의 애로점을 대신했다. 그속에는 높은 임금, 노조파업, 정부의 규제, 공무원의 적극적인 지원 정신 결여 등이 포함되어 있으리라.

하지만 중국에 진출한 기업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영세한 기업일수록 실패 확률은 컸다.

그곳에 진출해 사업적으로 성공한 한 중소 기업인은 나에게 성공시대의 무용담이 아닌 허탈한 마음을 전했다. 50대초반인 그는 “돈 벌면 뭐 합니까? 집에 들어가면 반겨주는 마누라가 있나요, 자식이 있나요, 돈 덜 벌어도 내 조국이 좋지요. 그런데 인건비에 파업에…”

그곳에서 인천까지는 45분. 서울로 들어오는 나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다. 중국은 마치 호기심 많은 10대 소년의 설레임이 넘치는 땅이라면 이 땅은 산전수전 다 꺾은 30대의 무기력증이라 할까.

아직은 더 뛰어야 하는데, 이 나라 산업의 주인공은 2,30대 청년이라야 하는데, 그들의 일터는 중국땅으로 다 가버렸다.

/한 선 교

국회의원(용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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