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호남 품에 안기기

산에 피어 산이 환하고/강물에 져서 강이 서러운/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사랑도 그렇게 와서/그렇게 지는지/섬진강가에 서서 당신도/매화꽃잎처럼/물 깊이 울어 보았는지요//

섬진강 시인 김용택님의 시다.

지난 달 말 한나라당 의원들은 2박3일간 섬진강가인 곡성과 구례로 연찬회를 다녀왔다. 머리가 아닌 가슴과 피부로 느끼기엔 분명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섬진강이 있었기에 뭔가 와닿는게 있음을 느꼈다. 우리에게 섬진강을 설명하던 선생은 이른 봄에 꼭 다시 찾기를 권했다. 아마도 김용택 시인도 같은 생각으로 시를 썼나보다.¶

한나라당 17대 국회의원 국토순례, 그 첫 번째 ‘섬진강에서 만나다’라는 프로그램으로 우리는 호남을 찾았다. 물론 나는 오랜 방송 생활속에서 전라도 곳곳을 찾을 기회는 많았다. 하지만 이번 방문의 감회는 새로웠다. 그것은 국회의원이라는, 거기에 한나라당이라는 신분이 주는 부담감이 없지 않았으리라.

‘만인의총’ 방문시에도, 섬진강 어귀에 도착했을 때도 몇몇 주민이 방문에 대한 낮은 거부감이 적힌 현수막을 들고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그동안 호남 정서에 잘못 처신해 왔던 한나라당으로서는 당연히 거쳐야 했던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아마 우리 일행중에는 남모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도 있었을 것이다.

많은 의원들이 이제 한나라당이 호남을 껴안아야 한다는 발언들을 했다. 나는 생각이 달랐다. 우리가 호남을 껴안는 것이 아니라 호남이 우릴 껴안아 줄 때까지 우린 열심히 그들과 만나고 그들의 소릴 듣고 그리고 그것을 진실로 실천하는 끝없는 과정이 되풀이될 때 비로소 호남의 품에 안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2박3일의 일정중에 우린 곡성군 봉조리 농촌 체험마을을 방문했다. 지난 번 다양한 반응을 불러 일으킨 의원들의 연극이 공연됐던 곳이기도 하다. 한 50~60가구가 모여사는 섬진강가의 한가로운 시골마을 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이 마을의 폐교된 학교를 리모델링해서 체험마을을 만들었다. 아직 완전히 정리가 안된 상태에서 우릴 맞이하며 “태풍이 오는 바람에 채 마무릴 못 지었구먼요. 귀한 손님 오셨는디 워쩔까.” 뵙기에 일흔이 넘으신 할머니의 참으로 진심어린 인사 말씀이었다. 그리고 우린 그 마음을 그대로 느꼈다. 호남은 이렇게 푸근하다.

일정 마지막 날 우린 망월동 국립묘지를 참배했다. 최근 우리 현대사에 가장 불행한 과거를 간직한 이곳이지만 이름모를 새소리만 들릴 뿐 평온하고 고요하기만 했다. 그러나 곳곳에선 아직도 억울한 죽음에 대한 흐느낌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묘지를 빠져 나오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됐다.

/한선교 국회의원(용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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