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원광법사의 어머니

신라24대 진흥왕(眞興王·540-576)때 경상도 안동에 박덕삼(朴德三)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들 경조는 삼대독자로 생후 석달밖에 안 되는 귀여운 아들이었다. 덕삼은 봄철의 바쁜때라 새벽에 들로 나가고 그의 아내는 부엌에서 아침식사 준비에 바빴다.

아침준비가 끝나 경조에게 젖을 먹이려고 안방에 들어가 자고 있는 경조를 안고 나와 부엌에서 보니 어느 틈엔지 죽어서 뻣뻣한 송장이 되어 있었다. 삼대독자 귀한 아들이 별안간 죽어서 송장이 되었으니 참으로 원통한 일이었다.

기가 막힐 지경이었으나 시아버지가 놀랄까봐 아무 소리도 않고 송장된 아기를 들쳐업고 남편의 밥을 함지에 담아 집을 나섰다. 남편이 아침밥을 다 먹은 후 아내는 죽은 애를 남편 앞에 내놓으며 전후사실을 자세히 한 후에야 목을 놓아 울었다.

‘이 불효 막심한 놈아! 아비 어미를 두고 이다지도 빨리 간단말이냐? 아비 어미 보다도 할아버지 앞에 이렇게 가야만 한단 말이냐? 아무리 죽은 놈이라도 이 아비에게 매를 맞고 가거라!’ 하고 뺨을 서너번 때렸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뻣뻣했던 송장이 혈맥이 통하고 체온이 돌며 신통하게도 소생하는 것이 아닌가! 그보다 더 큰 경사가 어디에 있을까? 덕삼의 아내는 과연 현부이며 효부였다.

보통 여인 같으면 아기가 죽은 걸보는 순간 대성통곡을 했을 것이요 눈앞이 캄캄하여 시아버지고 누구고 간에 생각할 여유도 없었을 것이며 참고 집을 나섰다하더라도 남편 앞에서는 만나자마자 붙잡고 울었을 것이나 남편이 아침밥을 다 먹고 난 후에야 침착하게 발설을 하였으니 그 얼마나 신중한 어머니 인가? 

그 훌륭한 어머니의 교훈을 받아 나중에 큰 인물이 되었으니 그가 바로 열두살에 한학에 달통하고 불서까지 공부하여 진흥왕 二七년(566년) 스물네살에 중이 되어 삼십 장년에 불교에 조예 깊은 진평왕(신라 二六대 왕 579-633년)의 왕사(王師)로 이름 높은 원광법사였다.

/서일성 경민대학 효실천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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