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3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 제10차 회의에서 용산 미군기지와 미 2사단을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하며 공여면적을 349만평으로 하였다는 결정이후, 평안하고 윤택한 마을이라는 이름을 가진 평택의 들판이 연일 뜨거운 논쟁에 휩싸여 있다.
미군재배치 전략의 일환으로 아마 그렇게 전개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만 가지고 있던 주민의 입장에서는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일방적으로 통보 받게 되었다는 불신이 증폭되었다.
왜 이전하는지, 왜 평택으로 오는지, 상상은 하지만 설명은 없다. 외교관계를 고려한 국책사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허망한 사과의 이야기는 있으나 보다 적극적인 설득은 없다.
정부가 현행 법체계에서 나름대로 각별한 노력을 하는 모습은 있다. 그러나 일단 불신의 감정에 휘말려 있는 주민의 입장에서 그런 논의 구도 자체가 미사여구에 불과하다는 또 다른 불신감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이전과 관련한 법 조항은 ‘하여야 한다’는 강제 조항이고 지원과 관련한 조항은 ‘할 수 있다’는 임의 조항이다. 법 기술상 그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약하다. 한시법으로 되어 있는 법의 기한이 2008년으로 되어있는 것도 불안하다. 이전까지만 존재하고 실제 지원을 해야 할 시기에는 법이 폐지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다. 그러다 보니 주민은 결국 미군이전을 위한 촉진법이지 주민을 위한 특별법이 아니라는 정서를 가지고 있다.
8월 24일과 25일에 지역 주민설명회를 열려고 했으나 일부 파행으로 끝나고 만 것도 이런 불신 정서의 연장에서 이해를 해야 한다. 9월 1일 평택대학교에서 보다 냉정하게 이 문제를 보기 위해 공청회를 개최하려고 했으나, 이미 불안감에 휩싸여 있고 우리 자신 말고는 아무도 우리의 생존권을 대변해주지 않고 있다는 주민의 외로운 마음을 달래지 못했다. 주민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형식적인 법적 절차를 거치기 위한 면피용이지 당초부터 진지하게 주민의견을 듣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제 정부는 차분한 마음으로 이 문제를 새롭게 시작할 필요가 있다.
우선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되어 있는 주한미군대책기획단은 주민을 설득의 대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군사작전을 하듯 이미 설정된 계획을 밀어붙이는 식의 접근은 해서는 안 된다. 지원특별법 설명 이전에 FOTA 결정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다. 예컨대 무혐의자가 재판의 결과 유죄가 선고되었는데, 수감생활을 편안하게 해 주겠다는 여건 개선의 조건이 설득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물론 미군기지 이전이 이런 상황과는 다르다. 국익을 고려해야 하고 이를 이해하려는 주민도 있다. 차제에 지역경제 활성화의 새로운 전기로 삼아보자는 이야기도 있다.
배후도시로 건설될 국제평화도시를 통해 주한미군의 관계를 문화적 차원에서 새롭게 정립하여 보자는 논의도 있다. 그러나 공동체의 해체를 경험해야 할 주민의 불신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끈기 있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끊임없는 대화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대화는 가슴에서 우러나는 상호존중의 정신이 전제가 되어야 하며,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한 입씨름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책기획단과 주민의 관계는 ‘피아(彼我)’의 관계가 아니라 ‘우리’의 관계라는 생각을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과제이다.
/이 원 희 한경대 교수 <행정학>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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