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부시의 북핵정책과 해법

북한의 핵무기개발 배경은 1990년 소련의 붕괴로 인한 미국의 핵위협에 대한 자위수단의 확보, 에너지원의 확충 그리고 김정일 체제에 대한 충성심 및 자긍심 고양으로 분석된다. 1989년 평안북도 영변 핵 단지 내의 시설들이 미국의 정찰위성과 프랑스의 상업위성에 의해 외부에 공개됐고 북한이 지난 85년 12월 NPT(핵확산금지조약:Non-Proliferation Treaty)에 가입했음에도 핵안전협정(Safeguard Agreement)을 체결하지 않은 채 핵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의혹을 미국과 서방국들이 제기하면서 국제사회의 쟁점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1989년 7월 제33차 IAEA(국제원자력 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총회 개막 전에 비공개 이사회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안전협정 체결의무를 이행하고 핵사찰을 수용하도록 촉구하면서 북·미간 마찰은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북한이 IAEA가입후 8개월 이내에 핵안전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데에는 국제원자력기구에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북핵문제는 오랫동안 국제사회의 주요관심사로 되어왔다.

북한은 북미간 불가침조약체결을 통한 생존권을 요구하며, 이에 응하지 않는 미국을 상대로 영변 핵시설의 동결해제 및 재가동, IAEA 사찰단의 추방, NPT 탈퇴 등 강경한 조치를 취하였다. 더욱이 북한은 핵무기보유를 인정함으로써 북한 핵문제는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북미 두 나라는 지금 팽팽한 긴장상태에서 정치적 대결을 계속하고 있다. 북미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북이 제기한 동시행동의 원칙과 미국이 제기한 순차행동의 원칙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의 전개 속에서 국제사회에는 북핵문제와 북미관계의 미래에 대해 양분된 시각이 존재한다. ‘비관론’과 조심스런 ‘낙관론’의 입장이다. 낙관론은 1990년대 초이래 북한의 계속되는 핵문제 제기는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통해서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북한지도부의 대미협상전략 차원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미국의 호응이 있는 한 한·북·미관계의 타협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부시대통령은 클린턴정부의 핵무기 개발포기와 체제보장 등을 일괄 타결하기 위한 정책을 뒤바꾸어 놓았다.

포괄적 접근이 아닌 북한의 ‘고사(soft collapse)’ 등 ‘대담한 접근(bold approach)’의 방법을 취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밝혔다. 핵프로그램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CVID: 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isarmament)’로 북한의 핵폐기를 위한 재정적인 보답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의 리비아식 선핵포기 제안에 대해서도 동시행동순서의 원칙에 기초한 일괄타결(Package deal)방식과 ‘동결 대 보상’이라는 종래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렇게 북미간의 갈등은 협상에 임하는 기본관점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작금에 한반도 체제의 전환을 국제적으로 보장하는 장치로 6자 회담이 열리고 있다. 6자 회담은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중국의 중재전달의 담합의 산물로 남쪽으로서는 최악부터 최상의 경우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능한 시나리오에 대비한 정책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최상으로는 북핵문제의 해결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는 공존의 논리와 윤리에 기초한 공존지향성, 주변 4국과 협력관계구축을 위한 평화지향성, 남북화해협력 및 통일과정에서 우리의 주도적 책임성, 그리고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통일을 추구하는 창의성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통일정책과 비전을 정립하여 제시해갈 필요가 있다.

한국민족주의에 대한 정치교육과 민족세력의 결집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하겠다.

/노 태 구 경기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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