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학을 가르치는 전공으로 인해 공무원 교육원에서 강의를 하는 기회가 자주 있다. 이때 강의를 받는 공직자의 유형은 뚜렷하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강의이후에 시험이 없고 그냥 일정기간 이수만 하는 되는 경우로 이때 강사는 매우 힘들다. 당장 일이 많은데 승진을 위해 점수를 받기 위해 연수원에 오는 경우로 이왕 온 김에 휴식이나 하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럴 경우 강사의 쇼맨십이 요구된다. 반면 강의 이후에 시험이 있는 경우 분위기는 긴장감의 수준을 넘어서 험악하기까지 하다. 문제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달라는 부탁이 거의 압력 수준에 가깝게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강사가 의도하려는 강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험이 차선책이라는 느낌을 갖는다. 강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시험문제로 잘 구성할 수 있다면 강의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학에서 평가 없는 교육은 의미가 없다는 주장까지 있다.
이러한 논의를 우리의 정부에 대입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시작은 있는데 집행과 평가의 과정에 대해서는 무심한 경우가 많다. 예산을 배정받기 까지는 많은 로비를 하지만 막상 예산이 배정되고 나면 그 다음에 잘 집행하는 지 그리고 집행 결과 무엇이 변화 하였는 지에 대해 관심이 부족하다. 열심히 잘 한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못한 사람에게 제재를 하는 노력도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열심히 일을 할 요인이 줄어든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 혁신의 출발은 정부 내에 성과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특히 경기도의 경우 본청이 10조원, 교육청이 1조원의 예산을 집행한다. 그러나 예산 집행의 결과 효과가 무엇인지에 대한 평가는 부족하다. 이제 주요 사업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체제가 도입되어야 한다. 흔히들 이것을 사업의 생애주기 관리(life cycle management)라고도 한다. 사업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사후관리가 체계적인 패키지로서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경기도의 재정이 예전처럼 확대일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축소가 예상되는 만큼 더욱 재정평가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몇몇 공직자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결정이 아니라 객관적인 기준을 정하여 결정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도 본청 산하기관에 대한 평가도 시급하다. 산하기관은 흔히들 도 본청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경직적인 운영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그러나 주민들이 보기에는 산하기관은 말 그대로 본청의 우산 아래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앙정부의 경우 산하기관은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낙하산 인사로 인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그러한 맥락에 있다.
이러한 운영에 반성을 하기 위해 기획예산처는 혁신 진단 지표를 작성하고 이에 근거하여 각 기관의 경영수준을 평가하고, 향후 그 수준을 고양하기 위한 체계적인 전략을 제시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지난 5월 3일에 전체 산하기관 1백여 명의 사장이 모여 대통령이 주관하는 자리에서 향후 혁신을 위한 토론회를 가졌다. 산하기관장으로 임명되면서 오랜 공직 생활을 하다가 말년에 좀 쉰다는 생각을 했거나 정치적인 후원자로서 활동하다가 이제 힘 좀 쓰려고 생각했던 CEO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당일 토론회의 사회를 보면서 이제 정부 산하기관이 민간 기업 이상의 생산성을 제고시켜야 한다는 분명한 대통령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기회가 되었다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 경기도정 혁신의 출발도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평가지표를 개발하고 이를 적용하고 그리고 성과에 따라 인사에 반영을 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정책평가와 인사정책이 묶여져서 통합평가체제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시험이 너무 많아 시험 위주의 학습을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시험이 없어 자신의 능력을 측정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경기도정은 아직 대외 공신력 있는 시험을 치르지 못한 경우이다. 이런 측면에서 경기도정 혁신의 출발은 평가체제의 구축에 있다. 이를 통해 혁신이 스스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자가발전(自家發電) 시스템을 구축하여 혁신의 내재화를 이루어야 한다.
/ 이 원 희 한경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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