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다보니 관심은 온통 건강에 관한 것들이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가며 건강관련 프로그램을 보면서 건강염려증에 걸리기도 한다. 위가 좀 더부룩하고 갑갑하고 쓰린 것 같아서 수면내시경이라는 것을 받아 보았더니 위궤양이란다. 처음에는 위암인지 위궤양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고 하여 한 1주일간 마음을 졸였다. 마음을 졸이면서 그동안 너무 심신을 돌보지 않고 무절제하게 생활해 온 자신을 자책하였다. 1주일 후, 의사선생님과 상담하니 위궤양이 확실하다고 해서 어찌나 고마웠던지 맵고 짜게 먹는데다가 조그마한 일에도 스트레스를 잘 받으니 그동안 위궤양이 생기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지.
위병이 나고나서부터는 더 열심히 건강 관련 채널이나 먹거리에 관한 기사를 훑는다. 기사 내용중에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말이 스트레스라는 말이다. 매운 음식을 먹고나서도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줘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겨울에 웃통 벗고 뛰는 사람도 스트레스 날려버리기 위함이란다. 얼마전 인터넷 기사에서 보니까 비슷한 상황에서 받는 스트레스 지수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높은 편이라고 한다.
세계보건기구가 정신건강을 주제로 하여 발표한 연례보고서에 의하면 세계 인구 4명 가운데 1명이 일생동안 1번 이상 정신신경질환을 앓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4억5천만여 명이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신경질환에 시달리고 있는데 환자나 환자 가족들이 이를 창피하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방법을 몰라서 전문의의 상담을 받지 못하다가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가 1천만에서 2천만명 정도이고, 이중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약 1백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기사를 읽은 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스트레스 실태와 그로 인해 정신적인 고통이나 질환을 나타내는 환자들의 실태는 어떠한지 궁금해졌다. 정신질환의 발생원인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무어라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뇌의 대사물질의 이상이나 유전적인 소인이 잠복되어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구체적으로 발병이 되는 것은 강한 스트레스가 주된 요인이 될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강한 스트레스 요인이 늘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지수는 상당히 낮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문명사적 대전환기를 맞이하여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격변과 불확실성을 겪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불안은 잠재적 스트레스가 된 지 오래이다. 세계화라는 거대한 물결이 일등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무시무시한 두려움을 몰고 왔다. 어제까지 가치있던 지식이 오늘은 쓸모없어지고, 어제까지 친숙하던 기술이 오늘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하등 기술로 전락한다.
나 하나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모두가 세계 일류를 향해 가족까지 해체시키는 마당에 나는 과연 어떤 존재란 말인가? 나는 쓸모있는 존재인가? 어느 한 구석이라도 쓸모있는 존재란 말인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과연 어디에 있단 말인가? 평생을 몸바쳐 일한 직장에서는 이제 퇴물이라고 나가라 하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감에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가족간에도 따스한 대화는 언제 해 보았는지 기억이 아득하다.
이렇게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아오는 과정에서 사회변화의 속도에 발맞추지 못하고 낙오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정신질환자가 될 수밖에 없다. 묻지마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들 질환자를 공동체의 울타리속에서 보듬어 재활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연구하는 일에 아주 인색하다. 이제 우리도 개인과 국가 모두에서 건강한 가치관을 정립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신뢰받는 정치, 사회풍토를 만들어 국민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낮추고 정신건강지수를 높여야 한다.
/김 현 옥 안산교육청 중등교육과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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