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가쯔라-태프트’ 밀약의 교훈

100년 전 오늘(1905년 7월 29일) 우리 민족의 장래가 일본수상 가쯔라와 미국의 육군장관 태프트의 비밀협정에 의해 그 운명이 결정되어버린 것이다. 그 결과가 그 해 11월 18일 을사늑약(乙巳勒約)으로 망국에 이르게 된다.

협약 내용은 첫째 일본은 필리핀에 대하여 하등의 침략적 의도를 품지 않고 미국의 지배를 승인할 것. 둘째 극동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미·영·일 3국은 실질적으로 동맹관계를 확립할 것. 셋째 러·일전쟁의 원인이 된 한국은 일본이 지배할 것을 승인할 것.

1906년에 들어와서 러·일전쟁이 일본에 유리하게 전개되는 과정에서 가쯔라-태프트 비밀각서, 제2차 영·일동맹, 그리고 전쟁종료와 함께 러시아와 포츠머스 조약 등으로 일본은 한국에 있어서 특수권익을 열강으로부터 인정받게 되자, 한국을 보호국화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1905년 10월 28일 일본각의에서 한국에 대한 보호조약의 원인을 작성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추밀원 의장 이또 히로부미를 한국에 파견하였다.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한국정부의 각의에서 수상 한규설이 강경하게 반대하자 그를 일본 헌병들이 감금하고 일본이 매수한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건택, 농공상부대신 권중현 등 소위 을사 5적을 앞세워 11월 18일 새벽에 고종황제의 반대를 무시하고 조약을 발표하였다.

이렇게하여 1905 7월 29일 가쯔라-태프트 밀약에서 1905년 11월 18일 을사늑약에까지 이르면서 우리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게 된다. 일본은 조선에 대해 을사조약을 강요했으며 미국은 이를 적극 지지했다. 이 협정의 내용은 1924년까지 양국이 극비에 붙였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오늘의 상황이 지난 100년 전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아시아 순방에서 알 수 있듯이 최근 미·일 동맹은 강력한 밀월관계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2004년 12월 발표한 ‘방위계획의 대강’과 2005년 2월 새로운 ‘미·일 안보협약’을 통해 중국과 북한을 안보에 대한 최대 위협으로 규정하였다. 자신은 중동 문제에 몰두하고 동북아에서는 일본을 내세워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보통 국가’가 되어 동북아의 맹주를 꿈꾸는 일본의 요구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1905년 합의한 밀약 이후 다시 한번 미·일 합작으로 동북아의 새로운 판짜기가 시도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여기에 6.15 공동선언 5주년을 맞으면서 남북이 공동으로 보국안민·척왜창의(輔國安民·斥倭彰義)를 위한 가쯔라-태프트밀약 100주년을 맞아 규탄운동을 남북의 좌·우의 민족진영이 함께 손을 잡고 선언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이자 만시지탄의 감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시아의 평화, 나아가서 지구촌 최대의 대륙 유라시아와 지구촌 최대의 바다 태평양의 힘으로 상징되는 세계평화의 초석이다. 남과 북 그리고 미, 일, 중, 러 등 고려반도 주변국들로 구성된 6자회담은 비록 ‘북핵’문제 때문에 마련된 것이지만 그것은 결국 ‘동아시아의 평화’를 창출하기 위하여 그리고 궁극적으로 ‘세계평화’를 건설하기 위해서 협력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국제적 역학관계는 남과 북이 합의 협력하면 핵문제든, 동북아공동체건설문제 등 능히 해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구한말의 불행한 상황이 재현되지 않기 위해서도 남북의 좌·우세력이 민족공조로 손을 잡는 것이 급선무인 것을 알아야 한다. 남북이 이러한 역사운동의 전개로 범민주진영의 단합과 민족재단결로 민족의 자주와 제국주의 반대, 자주독립정신을 고양시키며 외세반대의 정신을 함양해가야 한다. 그리하여 한반도의 전쟁반대와 협상을 통한 평화자주통일을 지향해가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한민족이 동북아 균형자, 중심국가가 되어 동아시아공동체건설을 표방해가도록 하자.

/ 노 태 구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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