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광주의 모대학에 있을 때였다. 지역 대학, 가령 목포의 대학 신문을 보면 목포에서, 광주의 도 회의에 가면 그런 기사가 동정란에 실리는 것을 보았다. 광주의 대학신문은 교수가 서울 회의에 가면 소개한다.
수도권에 있는 대학 신문은 교수가 외국 학회에 참석하면 동정란에 때로 실리기도 한다. 마치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라는 말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제는 기준이다. 서울에 있지 않다고 대학이 이류인 것도 아니고 한국에 있다고 세계의 일류 기업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여주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영어와 중국어 특기 수업을 하고 있다. 이제는 시골 산 밑에서 음식점을 하든 학교를 하든 농원을 하든 그 기준은 서울이 아니고 ‘원칙’이고 경쟁대상은 ‘세계’다.
가령 경기지역 특히 수원은 물이 많아 수원인데 화성이나 용인 근처에 저수지들이 많다. 경치가 좋은 그 저수지는 누가 이용해야 할까. 밥집? 낚시? 수상스키? 모텔? 일반 시민의 하이킹 혹은 자전거 길?
어찌 되어 있을까?
1위는 음식점이요 2위는 모텔 그리고 사람은 저 밖으로 밀려 나 있다.
법이 그래서 모텔이나 음식점 허가를 안 내 줄 수 없다고 한다. 그런 법이라면 앞서 말한 세계적 기준에 맞지 않는다. 맞지 않으면 그게 바로 후진국이다. 그런데 이런 후진국제도로 환경이 한 번 잘못되면 한 세대 두 세대를 지나야 고쳐진다. 즉 30년에서 100여년을 지나야 개선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겨울에 중국 센양에 가서 군인 호텔에 묵은 일이 있다. 영하 27도 되는 아침에 추워서 방 창문을 보니 홑 창문이다. 아무리 난방을 틀어댄들 무엇하겠는가? 이 호텔을 지을 때는 설마 지금처럼 발전하는 중국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창문을 다 뜯어 고치든 호텔을 허물고 다시 짓든 앞으로 몇 십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우리가 요즘 세계기준(Global Standard)을 찾는 것은 한 번의 제도나 건축물이 몇 십년을 지탱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도도 마찬가지다. 프로야구를 보면 피처 대신에 대타자를 쓰고 때로 대주자를 기용하기도 하고 피처도 선발, 중간 계투, 마무리, 마무리도 왼손잡이, 오른손잡이로 구분되어 있는 것을 본다. 아무렴 한 나라를 다스려 가는 기술이 야구의 전략만 못해서야 되겠는가.
정치인이나 공공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 시점에서 시야를 인간 보편성 혹은 세계 기준의 보편적 가치에 두어야 할 것이다.
대중들이 정치를 알기에는 그 내부가 투명화 되어 있지 않다. 민중은 종국에는 이기지만 단기전에서는 패배하게 되어 있다. 조금 더 정치나 행정이 투명한 가운데 세계기준에서 경기도의 건설, 환경, 문화 사업들이 진행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요즘 청계천 복원이 화제가 되고 있다. 시민이 즐거워 하니 나라가 즐겁다. 앞으로는 길 옆의 상인들이 즐거워 할 것이다. 모두가 이익을 보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치의 기초가 아닐까. 수원 화성의 복원이 모두에게 즐거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김 광 옥
수원대 언론정보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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