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으로 집사람의 손에 이끌려 추위에 입을 옷 한벌을 살까 하고 백화점에 들렀다. 얼어 붙은 경기 탓에 울상이 되어 있을 줄로 알았건만 가게의 여인들은 더욱 멋지게 상냥하게 생글거리고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가 하고 물어 봤더니 구매할 기분을 만들어 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명답이었다. 과연 백화점은 아가씨들의 친절뿐 아직은 텅 빈듯한 쓸쓸함이 이곳저곳 남아있음이 완연했다. 백화점을 나온 나의 발걸음을 붙든 건 어딘가 모르게 능숙하고도 정다운 노랫소리였다. 조인숙 노래교실…. 무대를 설치해놓고 한 사람의 피아노 연주자 앞에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두 분이 부르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청중들은 대략 70~80석 가운데 절반의 자리를 차지한 노인분들이었다.
“우리가 잡은 사랑의 향기 속에 눈물도 이젠 끝났다”, “세상이 힘들 때 너를 만나 잘해주지도 못하고”, “사는 게 바빠 단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못했다”, “100년도 우린 살지 못하고 언젠가 헤어지지만”
그렇다. 힘든 세상을 휘황찬란하게 만들어 주신 분들은 바로 저분들이다. 모진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도 인류의 최고 발명품이란 민주주의를 이 땅에 꽃피게 해주신 분들은 바로 저분들이신 것을! 우린 오늘날 저분들에게 무엇을 해주고 있단 말인가. 대접은 커녕 60세 이상 노인들은 발 닦고 집에서 쉬면서 국민의 대표를 뽑는 선거에도 참여하지 말라고 했던가. 한때는 쫓기는 그들을 명동성당에 불러 들여 어미닭이 병아리새끼를 품듯이 먹이고 잠재워주면서 위정자들에게 “젊은 사람들에겐 그 무슨 사상이라도 읽혀야 하고 우리의 반대편에 있는 주체사상일지라도 튼튼한 위장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이기에 건전하게 소화해낼 것”이라고 외치며 그들을 보호했던 나라의 어른이신 김수환 추기경에게도 “이젠 늙었으니 물러가 쉬라고”
그대들이 어떻게 비싼 쌀과 비료, 전기 등을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북으로 보낼 수 있었단 말인가.
필자는 그대들에게 아니 세상 사람들에게 감히 묻고 싶다. 이 나라의 주인이 과연 누구인가. 누가 주인이건대 누구에게 물어 보고 그대들의 마음대로 어른들을 발 닦고 쉬게 하고 앞으로 몇년동안 수조원의 돈을 적을 향해 던져 주는가. 세상의 어른들이여, 군인들이여, 경찰관들이여, 농민들이여, 학생들이여, 그리고 노동자들이여 이땅의 주인은 당신들입니다. 잠시 맡겨둔 권한을 빼앗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
/전 병 관 경희대 체육학부 교수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