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얼핏 보면 가을이 주는 사색의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져 독서와 어울릴 것 같다.
그런데 찬찬히 뜯어 보면 그렇지 않다. 창을 열면 파란 하늘이 보이고, 길가에 나서면 단풍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가을은 책상에 앉아 조용히 책만 붙들고 있기에는 웬지 좀이 쑤신다. 이런 환경뿐만 아니라 기온 또한 적당해 야외활동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이다. 그래서 이래저래 책을 가까이 하기 힘든 계절이 바로 가을이다. 실제로 도서 판매 실적이 부진한 시기가 바로 가을이라고 한다.
내가 속해 있는 교회학교 주일교사 모임에서 연초에 스스로 정한 10가지 할 일중 ‘한달에 1권 책읽기’가 있다. 이 숙제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한 사람이 매월 읽을 책을 추천하고 독서 후 나눔을 주관할 필요가 있다. 평소 책읽기를 즐겨하던 나는 자천타천으로 이 일을 맡았다. 그룹의 커뮤니케이션 공간인 싸이월드에 월초가 되면 이달의 추천도서를 올리고 월말에는 독후감을 게재한다. 한달에 1권은 필독서로 또 다른 1권은 권장도서로 올린다. 지난 10월에는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을 필독서,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권장도서로 올렸다.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한 결과 이 모임을 통해서만 20여권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독서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히 글자를 해독하는 것 이상이다. 자신의 기존 경험(여기서 경험이란 지금까지 읽었던 책을 통해 이미 얻은 간접경험과 삶에서 직접 체험한 직접 경험을 모두 포괄)을 바탕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일련의 사고 과정이다. 즉 독서란 저자와 독자 간의 상호대화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제대로 된 책 읽기’는 책의 내용을 자신의 생각 속에 받아들이고 재구성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가장 큰 목적은 정보 습득과 정서 함양이다. 정보 습득은 우리의 머리에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들을 넣어 두는 것이고, 정서 함양은 마음 그릇에 인간에 대한 이해와 따뜻함을 담는 것이다. 이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생각은 쑥쑥, 가슴은 따끈따근”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독서에 대한 표현들이 많다. 독서를 ‘과거의 현인들과의 대화’, ‘올바른 세상읽기의 과정’, 또는 ‘자신의 내면과의 만남’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모두 다 독서가 우리에게 주는 효과들을 겨냥한 것이다.
지난 10월 고려대 개교 100주년 기념 노벨상 수상자 초청 강연에 응한 호주 멜버른대 피터 도허티 교수는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할머니가 책을 많이 읽어줬고, 6~7세 때부터 책을 혼자 읽기 시작했다. 노벨상을 받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은 독서”라고 말하면서, “부모가 어린 아이들에게 매일 책을 읽어주는 게 좋다”고 책 읽기를 권했다. 또한 자신은 지금도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책을 가까이 한다고 했다. 책읽기야 말로 학습능력을 키워주는 좋은 수단인 셈이다.
요즘에는 독서를 단순히 독서로 보지 않고 다른 것과 융합해 한단계 발전된 개념으로 보기도 한다. 이른바 독서를 통해 심리 치료를 하는 독서치료가 그렇고, 독서를 통해 경영을 더 효율적으로 해 보려는 독서경영이 그렇다.
이렇게 독서가 여러 부문에서 요구되는 마당에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구호가 더 이상 필요 없었으면 좋겠다. 대신에 생각을 키워주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독서의 맛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인생을 보다 풍요롭게 해주는 책 읽기가 여기저기에서 소리 없이 퍼져 갔으면 한다.
/박 유 찬 한국은행 경기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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