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트리는 독일의 종교학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로부터 유래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마르틴 루터가 숲 속을 산책하고 있었다. 전나무로 빼곡해 어둡던 숲 속이 다른 때와는 달리 전등을 켜놓은 것처럼 빛나는 것이 아닌가? 상록수의 끝이 뾰족해 마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향하는 것 같이 보여 루터는 전나무 하나를 집으로 가져다 눈 모양의 흰 솜을 얹고 달빛 모양의 전구들을 달았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마스 트리의 유래이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불멸, 영생, 부활 및 원상회복 등을 상징한다. 크리스마스를 나타내는 빨간색은 사랑과 희망, 녹색은 희생과 영원한 생명, 하얀색은 순수와 순결 등을 각각 나타낸다. 오색 꼬마 전구에 불을 밝히면 온 세상이 훈훈해지고 따뜻해짐을 느낀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런가 매년 이맘때가 되면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는데 수천만원씩 예산을 투입하고 점등식을 갖는다. 어떤 도시는 구조물을 세워 트리를 만들기도 하지만 어떤 도시는 거리의 가로수를 이용해 트리를 장식한다. 자치단체와는 별도로 각 지역 대형 상업시설들도 가로수를 이용해 마구잡이식으로 장식하고 있다. 가로수의 수난시대이다.
산림법에 따르면 각 지방자치단체는 가로수 보호 의무가 있다. 그러나 현실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보호는 커녕 오히려 스스로 나서 가로수를 괴롭히는 일에 앞장서고 있으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고유가시대 에너지절약에 앞장서야 할 자치단체의 양식까지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해를 넘겨 날마다 새벽까지 밝혀지는 휘황찬란한 가로수의 불빛을 보면서 그들은 정녕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혹시 겨울철 도심을 밝히는 가로수의 조명 장식이 야간 경관을 아름답게 장식해 많은 사람의 정서 함양에 기여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만 고려하고 있는 건 아닌지.
가로수가 불쌍하다. “가로수의 지나친 조명 장식에서 나오는 열과 빛이 휴식기에 들어간 나무에 적잖은 스트레스를 준다”는 산림청의 연구 결과가 뇌리를 스친다. 그 열과 빛에 고통스럽고 괴롭기 때문에 인간들이 즐기는 크리스마스, 그 크리스마스를 가로수는 싫어할 것이다. 저 나무들도 생명이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의 참뜻으로 돌아가자. 예수님께서 가로수 트리를 가리키며 “이게 뭐지요?”라고 물으신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될지….
/황 경 철 동남보건대학 환경생명과학과 교수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