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는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때부터 가까이는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부터 우리나라는 세계화의 영향 아래 사회전반에 걸쳐 시장논리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식 개혁을 겪고 있다.
이전에는 사회를 운영하는 주 기제가 정부였는데 이제는 시장으로 바뀌었다. 전에는 정부가 시민사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이것에 근거하여 사회를 운영하였다면, 이제는 시민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선택을 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다보니 소위 돈벌이가 안 되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퇴출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비단 경제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장논리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생각되던 문화·예술 영역에서도 돈벌이가 안 되는 예술성 작품들이 상업성이 강한 작품들에 밀려나고 있고, 심지어 정부행정에서조차 시장논리를 도입하여 낭비요소들을 제거하자는 작은정부론이 주된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 정부행정에서만큼은 이러한 시대추세가 재고되어야 한다. 작은정부론자들은 세계화 시대에 김영삼 정부가 박정희식 개발독재 모델을 신속하게 청산하지 못해 경제위기가 닥쳤다고 진단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오히려 반대로 김영삼 정부가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던 정부주도 경제성장의 역사적 경로를 무시한 채 작은정부론 시각에 따라 행정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에 외환위기가 일어난 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군사정부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규제완화·정부의 능률성 향상 등을 내세우며 5개년 개발계획을 폐지하였고 경제규제 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하여 재경원으로 축소시켰다. 그 결과 정부는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재벌소속 종금사들의 무분별한 외화차입과 해외투자를 감시하고 규제할 능력을 상실했었던 것이다.
정부는 단기보다는 장기적 미래를 예측할 줄 아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정부는 기업이 생존할 수 없는 시장실패 영역에서 존재의의를 찾는 독점조직이다.
시장에서는 한 기업이 망하면 다른 기업 제품을 살 수 있지만, 공적 영역에서는 대안이 없기 때문에 정부가 실패하면 국민들이 엄청난 고통에 직면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정부는 능률성보다는 효과성(실패 없는 목표달성)을 더 중시해야 하고, 효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가외성(redundancy)을 구비해야 한다. 즉 국민들에게 큰 혜택을 주는 그리고 실패할 경우 국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는 정부기능일수록, 단기적으로는 예산이 더 들더라도 2중 3중으로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김영삼 정부가 행정개혁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예산을 절약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최대로 늘려 잡아도 1조원은 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공채발행 등으로 조성되어 민간부문 구조조정에 투입된 150조원의 공적자금 중 60조원 정도가 회수불능이라 정부의 부채로 처리된다고 한다. 정부가 이것을 상환하기 위해서는 결국 국민들이 상당기간 동안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려 깊지 못한 정부의 결정 때문에 국민들이 장기적인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정부가 단기적 시각에서 예산 몇 푼 아끼는 것에 초점을 맞출 때가 아니다. 돈이 더 들더라도 안전위주의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보다는, 소 잃기 전에 외양간만 고치는 것이 더 나은 것 아닌가.
/하 태 수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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