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교육위원 정당명부 비례대표 선출이라니…

우리나라 헌법 31조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받도록 선언하고 있고 이를 근거로 만들어진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도 교육의 자주성 및 전문성과 지방교육의 특수성을 살리고 지방교육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교육감과 교육위원회 설치를 명시하고 있다. 지금 전 세계 국가중 헌법에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들과 달리 교육에 대한 각별한 배려와 존중의 의지를 담아낸 것이 아니다. 알다시피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국가정치권력에 의해 우리 교육이 너무나도 훼손당해 왔기 때문에 이를 막고자 헌법에 보장 해 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이 나라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부총리 발언과 국회 교육위 법안심사소위에서 검토되고 있는 내용 등을 종합해보면, ‘각 시·도 교육위원의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방안’이란 실로 정치권의 고단수(?) 야합의 산물이 논의돼 왔음에 교육계의 한사람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이는 기초의원 공천제를 도입해 지방자치 권력마저 장악한 정치권이 이젠 교육마저 각 정당별로 공천(추천)권을 행사해 줄세우기를 강요하고 정치에 예속시키겠다는 의도이다.

그런데 이런 정치적 의도를 여·야는 논의했다 치더라도 교육의 정치적 독립성을 지켜야 할 교육부총리가 앞장서 이런 발상을 내놓은 점에 대해선 참으로 어이가 없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지방분권전략이란 이름으로 추진된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을 둘러싸고 진행됐던 많은 토론과 제안, 교육전문가들과 교육 관련 단체들의 문제 제기 등을 수렴하기는커녕 정당의 이해득실에 맞춰 헌법에 의해 보장된 교육의 중립성과 교육자치구조 등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정당명부제를 교육계에 도입하는 건 결코 묵과할 수 없다. 교육을 정치권에 종속시키고 나아가 지금과 같은 지역주의에 편승, 특정 지역에 특정 정당이 교육을 독식하고자 한다면 우선 헌법부터 개정한 뒤 추진해야 할 것이다.

정치권은 지난해부터 지방자치법 개정을 공언해 왔고 주된 내용은 교육감과 교육위원 등을 직선으로 선출하고 시·도 교육위원회를 광역의회와 통합하겠다는 것이다. 선출방식 변경에 대해선 교육계 내부에서도 별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 현행과 같은 학교운영위에 의한 간선제는 민주주의 대표성원리에 분명 미흡하고 충남이나 제주, 울산 등 많은 지역 교육감 선거과정 등에서 나타난 불미스러운 일들이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직선제를 하기 위해선 사전 논의할 게 또 있다. 선거권역 획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다. 국회의원 선거구보다 5배에서 10배는 넓은 교육위원 선거권역을 이대로 두고는 불가능하다. 그러자면 교육위원 숫자가 엄청나게 늘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참여정부의 분권전략 일환인 교육위원회의 시·도의회로의 통합은 더욱 어려워진다. 정치권이 총론성격의 직선제를 합의하고 각론을 다뤄보면 이처럼 교육위원선거는 단순하지 않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전국 교육위원선거를 3개월 정도 밖에 남겨두지 않은 지금까지 어떤 합의안도 마련하지 못한 채 오직 직선제와 시·도의회와의 통합만 염두에 두고 있다 이러저러지도 못하니까 나온 안이 정당명부비례대표제가 아니길 바란다. 앞서 말했지만 이 안은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요, 헌법소원이 제기되는 문제이므로 불가능하다. 더구나 신성한 교육을 정치권에 예속시키는 일에 대해 지금 교육계가 한 목소리로 성토하고 있는데다 법 개악에 반대하기 위해 전국교원단체총연합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한국교원노동조합, 전국초·중·고교장단 대표, 전국교육위의장단, 전국교육위원 등이 오는 17일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준비하고 있어 엄청난 저항이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이 정치권으로부터 멀어져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교육은 정치권력의 것이 아니고 국민의 것이기 때문이다. 간선제여서 교육자치의 정당성이 적다면 얼마든지 직선으로 해도 좋다. 어떤 경우에도 정당명부비례대표는 안된다. 그런데 선거권역 재조정과 광역의회와 통합안 등 함께 논의해야 할 게 많아 다가오는 7월 선거에 직선제가 불가능하다면 4년 후인 2010년부터 직선제를 실시하자. 교육은 조급하게 추진해서 될 일이 아니다. 교육은 멀리보고 차분하게 준비할수록 시행착오가 적다. 천천히 가자.

/이 재 삼 경기도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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