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인가? 호프집인가?

“이웃간 접촉사고가 났을 때 경찰서로 가시겠습니까? 호프집으로 가시겠습니까?” 한 맥주체인점 광고가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온다. 부담 없는 일과성의 선택일 수도 있지만 일련의 사회병리현상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요?”라고 말하는 여성의 목소리에는 염치와 진솔함이 묻어난다.

필자는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현상들을 보면서 문득 이 표현의 기능을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는 잡다한 교통사고나 사소한 폭행사고 등에서 “미안합니다”란 표현을 극도로 자제하려 한다. 그것이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결국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빌미가 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한편 정치인이나 기업인 등이 각종 부조리에 대해 “미안합니다”고 말할 때는 법률적 책임을 면제해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사과가 진실성이 결여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남의 미안함은 수용하지 않고 자신의 미안함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있는 것이다.

며칠 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등장한 캐나다 현지 교민 리포터는 어떤 사건이 벌어 졌을 때 절대 “미안합니다”라고 먼저 말하지 않는다는 캐나다 현지의 사회분위기를 전했다.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면 이에 따른 법률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그는 최근 이러한 법률적 책임회피 의식으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면서 시민사회에서 “미안합니다”란 표현에 대한 법률적 책임을 부가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모든 행위를 법률적으로 판단하려 하는데서 비롯된 이 문제들에 대해 뚜렷한 해결책이 있어 보이진 않다. 형벌이 무거우면 백성이 그것을 피하려고 할 뿐 진심으로 승복하지 않는다는 공자의 덕치론(德治論)이나, 잘 짜여진 법조항에 의해 잘 다스려진 사회보다 법 조항이 없어도 잘 다스려지는 사회가 더 좋은 사회란 루소의 사회계약론(社會契約論)은 이에 대한 반추의 단초를 제공해주긴 한다.

하지만 자칫 그것이 지나친 인치(人治)와 인정주의로 흘러 무책임한 “미안합니다”를 남발하게 하거나 법치를 훼손할 가능성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이라면 경찰서로 가겠는가? 호프집으로 가겠는가?

/이 정 진 오산대 이벤트연출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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