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인 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 마음이 멀어지면 사람이든, 체제든 어울려 지낼 수 없는 게 당연한 이치다. 남북이 그러했다. 지척에 두고 서로 경시하고 비난했던 게 과거의 현실이었다. 그래도 같은 언어와 문화를 지닌 한 민족이란 고리는 교류 10여년만에 서로를 이해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게 한 충분조건이었다.
비무장지대를 지나 북측CIQ에 도착하자 군인들이 나와 통관절차를 진행했다. 웬만한 조건만 갖추면 드나드는 게 어렵지 않은 까닭에 많은 이들이 경계를 넘었고 북한 군인들은 태연한 말투로 행정절차를 진행했다. 다시 차에 오른지 불과 10여분만에 개성에 도착했다. 예상하지 못한 짧은 여행이었다. 서둘러 준비하고 애니메이션 공동 제작을 위한 회담을 진행했다. 문화콘텐츠산업 교류는 처음이었기에 긴장을 하며 협상에 임했다. 우리의 제안이 얼마나 매력적일까, 무리한 요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서로의 입장을 어떻게 조율할까, 사소한 말 실수로 회담이 결렬되는 건 아닐까. 다행히 우리의 제안이 그럴듯했고 북측 요구조건도 타당했기에 일사천리로 논의가 진행됐고 사소한 실수들에도 너그러이 이해하고 웃으며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서둘러 준비했는데도 충분한 당위성이 있었기에 의견의 일치는 예상 외로 어렵지 않았다.
남북간 애니메이션 공동 제작은 민간영역에서 진행된 사례가 있었지만, 공공영역에서 주도한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없는 새로운 사업이다. 북한의 우수한 제작능력과 전문인력, 저렴한 인건비와 제작비 등으로 머리를 싸매는 남한 애니메이터들의 고민을 날릴 수 있는 해결책이고 동일한 언어와 문화가 누구와의 공동제작보다 쉽게 훌륭한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조건임을 알고 있었는데도 먼 길을 헤맸던 게 우리의 모습이었다. 믿을만한 곳을 지척에 두고 말이다.
민간이 추진하기 어려운 일은 공공영역에서 다리를 놓아야 한다. 문화콘텐츠산업의 중요성에 대해 모두 동의하는 상황에서 남북간 교류와 협력 등은 중요하리라는 건 어렴풋한 짐작이었다. 하지만 짧은 방북기간동안 느낀 감상만으로 남북한 문화콘텐츠 교류가 21세기 문화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신뢰를 쌓아 오래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공공영역에서 다지는 일이다.
/김병헌 경기디지털콘텐츠 진흥원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