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지구촌화 사회변화에 직면하면서 ‘초고속 인터넷’, ‘초고속 성장’, ‘초고속 승진’ 등 우리 사회는 ‘빠른 가속도’ 문화를 좋음 혹은 성공과 동의어로 받아 들이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스피드가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이같은 속도의 코드가 우리를 디지털혁명의 선두주자로 키우게 됐음에 우리는 스스로 인정하며 그리고 만족하기도 한다.
그러나 빠른 퀵서비스, 빨리 취하는 폭탄주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인의 ‘빨리 빨리’ 문화는 빠른 근대화의 원동력이었지만 애시당초 우리의 전통적 자리에는 여유로움과 기다림의 미학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미국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날드의 ‘빠르고 획일적인 맛’에 비해 우리의 전통음식은 ‘느리고 다양한 맛’을 창출했던 슬로푸드였다는 점을 다시금 음미할 필요가 있다. 메주로 담근 된장과 간장·고추장, 김치, 젓갈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곰탕, 설렁탕, 삼계탕, 각종 떡이나 묵 등은 ‘천천히 기다리며 숙성된’ 완벽한 슬로푸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러시아의 보드카나 캐리비안 해적이 즐겼던 럼주 처럼 진하고 각박한 동적 육식성이 아니라 청주나 막걸리처럼 여유있고 담담한 정적 채식성 풍류를 취하며 살아 왔다.
지난달초 탄생한 각 지방정부는 이제 갓 한달을 넘고 있다. 최근 신문을 비롯한 각 언론 보도매체를 통해 흘러 나오는 각종 기사들을 접하면서 많은 지방정부가 이같은 슬로 풍류를 망각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를 갖게 된다. 각 지방정부가 쏟아내는 수많은 시책과 전략 등이 과연 충분한 숙고와 냉정한 진단을 통해 얻어진 결과일까?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예측을 통해 지방정부 비전을 세우고 단계적 실천 모드로 이어지는 여유로움과 기다림의 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느림이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가꾸는 대안”이라고 역설하며 “가속은 시간의 사회적 공허함”이라고 설파했던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의 주장이 이같은 의문에 논의의 화두를 던지고 있다. ‘빨리빨리’ 문화에 취한듯, 계절을 앞당겨 한 여름 도처에서 코스모스가 피고 있어도 고추잠자리를 품에 안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어야 하는 가을 꽃으로 될 수가 없지 않은가?
/신원득 경기개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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