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이야기가 한창이다. 얼마 전 작별을 고한 친구가 임종 전 바다를 그리워하며 말했다. “바다를 보고 싶어요. 푸르고 너른 바다 앞에 서면 바다는 너무도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그리워하던 바다 앞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어머니 품에 안긴 아이처럼 조용히 바다와 마지막 작별을 고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른 아침에 꿈꾸는 바다부터 시작, 일출의 황홀한 신비의 바다. 보랏빛과 흰빛의 어울림 속에 푸른 물결이 부서지는 바다. 일몰의 장엄함에 숨을 멈추게 하는 바다. 폭풍 속에선 거칠고 사나운 파도를 일렁이는 검은 바다. 다양한 얼굴의 바다는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으며 우리에게 자신의 꿈을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바라 보면 참으로 혼탁한 세상이다. 뒤늦은 태풍이 지나가고 아직도 구름 낀 컴컴한 하늘과 회색의 빛에 물든 바다처럼 신문이나 TV, 라디오 등을 들어도 아득한 안갯 속을 걷고 있는 것 같다. 꿈을 잃어버린 세상에, 천박한 이야기꾼들이 돼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든다.
가치관의 혼란과 무질서, 온갖 비자금 이야기들, 사상과 이념의 질긴 줄에 묶여 허우적거리는 사회, 쉽게 목숨을 끊어 버리는 허무 속의 사람들, 그리고 그렇게 버려져 방황하는 자녀들…. 열정을 잃어버린 세상이 각자의 방향으로 노를 저어가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떠밀려 흘러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감돈다. 바다 이야기가 매스컴을 온통 오염시키고 있고 바다 위에 반영돼 떠 있는 하늘의 많은 이야기를 오염시키고 있다. 바다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맑은 이야기가 전설이 돼 가고 있는듯 하다. 어떤 시인은 “사람은 사랑한만큼 산다”고 말하고 있는데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세상인가?
사람이 살아 갈 수 있을만한 사랑을 나누고 있는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 생명을 주는 사랑, 사람을 살리는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일까? 그래도 사람은 사랑한만큼 산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웃으며 진한 커피 한잔을 가져다 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한 친구가 내 앞에 서있다. “우리 꿈꾸는 바다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차영미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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