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을 다녀왔다. 무수히 떠도는 소문들만 듣고 실상 그날 아침 핵실험을 하는지도 모르고 우리 일행은 화진포 아산 휴게소를 거쳐, 남한과 북한의 경계를 넘었다. 지나면서 바라보이는 동해의 푸른 물들과 해변과 바다는 그어 놓은 깊은 경계를 망각하고 서로를 얼싸 안고 흰 물살을 가르며 파도치고 있었다. 어쩌면 바다는 조용히 그 자리에 있는데 정작 파도치는 건, 깊은 경계를 쌓고 사는 우리들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향을 잃고 목 놓아 울어도 말없이 안아주는 넉넉한 바다였다. 한편으로 임진강이 길게 누워 흐르고 있는 곁길을 따라 버스를 타고 지나면서 도라산역도 볼 수 있었다. 민통선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남쪽의 최북단 내 기차역이 개통됐으나 한번도 달려보지 못한 새마을호가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애원하며 서있었다. 민통선 안, 그곳이 바로 군사분계선이었다. 무언가 그곳에는 특별한 게 있을 것이란 기대와 설렘으로 통과했는데, 가을걷이를 끝낸 논과 낮은 산들, 그리고 그 주위는 평온만 감싸고 있었다. 흰 왜가리들이 유유히 날아다니는 그곳은 전쟁터같은 험한 장소라기보다는 평화로움을 간직한 남과 북의 대치장소였다. 총과 붉은 깃발을 든 어린 군인의 선한 눈빛, 수줍고 예의 바른 헌병들의 모습 등이 분단의 아픈 자국이 미움이 아니라 그리움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북측 검문소를 지나면서 보이는 민가에선 밥 짓는 연기가 피어 오르고 일을 끝내고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는 북측 사람들이나 붉은 머플러를 목에 묶고 하교하는 학생들이 멀리 보였다. 곳곳에는 붉은 글씨가 새겨진 주석비나 구호처럼 쓰인 바위 글발을 흔하게 볼 수 있었지만, 그런대로 관광안내원의 고운 민요가락도 들을 수 있는 평온한 분위기였다. 핵실험에도 아무 일도 없는듯 낙엽에 불타는 금강산의 또 다른 이름, 풍악산과 외금강 만물상 등지에는 하늘이 빚어 놓은 만물의 작품이 놓여있었다. 상류담과 옥류폭포 등이 천상의 보석 같은 옥빛을 품고 있었다. 금강산은 자연이 한반도에 내려준 최고의 선물이란 찬사를 받는 곳으로 민족의 혼과 얼이 서려있는 곳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가 하나 되려는 시도가 이뤄진 장소, 불안정하게나마 남한과 북한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다. 미래의 통일된 한국을 미리 경험하는 소중한 장소이기도 하다. 어떤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명산으로,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리운 금강산, 이처럼 아름다운 장소가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차영미 성빈센트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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