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은 수학능력(수능) 시험일이었다. 수능 며칠 전에는 학사모(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등 35개 시민단체들도 수험생들이 수능을 편안하게 치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이날 하루만이라도 논쟁이나 투쟁을 멈춰 주세요”라고 호소하기까지 했다. 매년 온 나라는 겨울을 맞기 위한 홍역처럼 수능을 치른다. 수능 시험일이 다가올수록 수험생들을 편안하게 해줘야 하는데, 온 나라가 이렇게 떠들썩 하니 수험생들은 더욱 불안해진다. 친척들이나 어른들이 “시험 잘 봐”라고 하는 인사말조차 수험생들에겐 스트레스가 된다. 12년동안 공부한 결과를 하루에 평가받으니, 긴장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수능을 치르고 집에 온 딸이 시험장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줬다. 한 여학생이 첫째 시간 종료 종이 울렸는데도 답을 답안지에 다 옮겨 적지 못했다. 그 여학생은 애걸했지만 감독관은 “책임을 질 수 없다”며 답안지를 걷어갔다. 그 여학생은 교실바닥에 드러누워 발버둥을 치며 소리소리 지르며 울었다. 감독관이 교실을 나가려 할 때 바지를 잡고는 “다 아시잖아요? 다 아시잖아요!”라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몇주일 전에는 미국에 사는 처제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날 자녀는 엄마에게 이야기도 하지 않고 SAT(미국식 수능)를 보고 왔다고 했다. 엄마가 자녀의 장래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도, 수험생이 대학 진학에 관심이 없어서도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토익이나 토플처럼 1년에 7회 정도 SAT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교육열이 높은 나라도 없다. 이처럼 교육열이 높다고 하는 나라에서 수능을 하루에 본다는 건 이해되지 않는다. 진정으로 교육열이 높은 국가라면 우리 학생들을 수능 스트레스로부터 구해내야 한다. 한번의 실수나 불운이 일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면 너무도 가혹한 일이다.
교육부가 한해에 두 번 수능시험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해라도 앞당겨야 한다. 기성세대들이 자기 자식의 성적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사이 우리 자녀들은 수능의 중압감에 짓눌려 생활해야 한다. “다 아시잖아요”란 수험생의 절규를 통해 우리의 교육적 직무 유기를 깨달아야 한다. 교육열은 교육 욕심이 아니라, 교육에 관한 열정이자 강한 에너지다. 이 강렬한 국민적 교육열을 한데 모아 당면한 교육의 문제점들을 하나 하나 녹여나가야 한다.
/이병석 경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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