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가치

차영미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장
기자페이지

너무도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저 달려가고 무엇을 위해 달려가는지도 모르면서 바쁨을 외치고 있다. 수많은 계획들을 세우고 사람을 만나고 회의를 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하루를 보내면서 많은 일들에 지쳐 밤이면 고단히 잠든다. 경쟁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전투에 출정하는 용사처럼 무장하고 바쁜 회오리 바람 속에 자신을 맡기고 살아간다.

그런데 정작 무엇을 희망하며 얼마나 거대한 일들을 일궈며 살아가고 있을까. 무엇인가를 바쁘게 했지만 실상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창출해내고 마음 속 뿌리부터 깊은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나태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게으른 상태인 반면 느림은 삶의 매 순간을 구석구석 느끼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 적극적인 선택이다. 이는 자동차를 타고 달리다 멋진 풍경을 발견한 뒤 자동차에서 내려 천천히 걷는 것, 또는 풍요롭게 살기 위해 서재에 들어가 책을 읽는 것과 같다. 피에르 쌍소의 ‘느림의 철학’은 “느림의 가치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같은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고 말한다.

물질과 효율, 경쟁과 속도 등으로 규정되는 세상을 살아가는 오늘날, 휴식 또한 인간적인 만족으로 이어지는 효율과 속도가 있어야 휴식한 것 같고 하루를 살아가며 움직이는 일상에서도 능률과 성공 등에 연연하는 모습을 거의 매일 본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불편한 마음으로 1년이나 10년을 기다리며 천천히 다가오는 충만감, 마음 우물에서 길어 올리는 깊은 내적 고요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몇년동안의 어린 시절 시골에서의 삶의 경험이 느림의 철학적 삶이었다. 어린 시절 가끔 친구들은 흙밭을 놀이터 삼아 흙과 나무와 풀벌레와 어울려 놀고, 붉은 노을이 천천히 하늘을 물들일 때까지 긴 하루를 즐겼다.

그런데 오늘날의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빠른 인터넷 게임이나 속도감 넘치는 오락을 바쁘게 즐기고 많은 과제물과 과외활동으로 빠르게 움직여도 하루가 부족하고 빈곤하다. 경제성장과 산업화에 떠밀려 기계적인 소리에 바쁘게 살아간다. 조금은 천천히 살아가면 좋겠다. 11월의 늦은 가을날 천천히 은행잎 쌓인 거리를 걸어보자. 마지막으로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숨을 고르어 보자. 느림 속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 자신을 뒤돌아 보자.

/차영미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