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황제의 똥자루

김우 자혜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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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때 아버님으로부터 들은 우화입니다. 고종이 어린 나이로 조선의 왕위를 계승하기로 결정됐습니다. “면장도 논두렁 정기를 받아야 된다”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왕궁의 사주관상 대가들이 총동원돼 앞으로 조선 천하를 지도할 사람에게 왕재가 있나 없나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얼굴이 영민하고 준수해 골상학적으로 우수한가? 신체 건강하고 장대해 정무를 집행할 체력이 있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보행을 비롯한 여러 행동에서도 단정한 자세를 볼 수 없었습니다. 좌중을 압도하는 힘있는 목소리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필체를 살펴보아도 한 국가를 지도할 웅건한 기개와 강인함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은 좋은 지도자를 만나야 희망과 비전을 갖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지 않습니까? 낙심한 왕재 평가단은 마지막 희망으로 화장실까지 어린 고종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어린 고종이 매화틀에 앉아 볼일을 보는데 그 똥자루가 얼마나 굵고 단단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떨어지는 기세가 엄청나 아이 팔뚝만한 똥자루가 그냥 “툭! 툭!” 소리내며 힘차게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고종은 자기를 주시하는 백성들에게 “나도 왕이 될 자격이 있다”고 힘차게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이날 이후 전문가들을 위시한 백성들은 두말없이 고종을 왕으로 인정하고 따랐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에겐 한가지 이상의 고유한 장점이 있는데 그것을 잘 살리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장애학생들에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한가지 이상의 특장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들의 굵은 똥자루를 발견,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잘 키워 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일입니다. 며칠 전 필자가 근무하는 자혜학교 김유진 학생이 정신지체란 장애를 극복하고 국립재활복지대 컴퓨터영상디자인학과에 당당히 합격한 건 학교와 학부모, 그리고 본인 모두가 합심해 고유의 똥자루를 굵고 단단하게 키워나간 결과라고 봅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 등을 서로 인정하고 격려하면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김우 자혜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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