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빠라기

임병석 수원 장안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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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산 굽이굽이 높게 솟고 백년천 굽이굽이 낮게 흐르네” 필자가 다니던 초등학교 교가 노래말 중 일부이다. 이 노래는 물론 대부분의 학교 교가 가사에는 어김없이 그 지역의 산이나 강, 벌판 등 자연들이 포함돼 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작곡가 홍난파 선생의 ‘고향의 봄’이란 동요는 우리나라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곡으로 역시 자연을 노래하고 있다.

필자가 태어나 자란 곳에 교가에 나오는 백년천이 있었다. 물놀이도 할 수 있을만큼 매우 맑고 깨끗하고 제법 물살도 급하게 흐르는 시내였다. 냇가로 가는 길을 따라 화사하게 핀 아카시아꽃은 장관이었다. 길섶에는 토끼풀꽃, 냉이꽃, 달맞이꽃 등이 늘 반겨주곤 했다. 성장한 지금이야 동네 뒷산쯤으로 여겨지지만 어렸을 때 본 청명산은 험한 산이었다. 산중턱에 안개가 피어오르고 뭉게구름이 걸쳐있을 땐 더욱 신령스러웠다고나 할까? 아무튼 높은 산이었다는 기억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백년천은 메말라 물이 흐르지 않는다. 물고기도 사라졌으며 길섶에 피었던 아름다운 꽃들은 아스팔트에 덮여 볼 수가 없게 됐다. 안개가 피어오르던 청명산 허리에는 뭉게구름 대신 아파트들이 빼곡하게 들어 서 있다. 꿈과 낭만이 있던 유년의 고향, 콸콸 소리 내며 흐르던 맑은 물, 길섶에서 수줍게 웃어주던 들꽃들, 등·하교 때 도열해 반겨주던 아카시아나무들…. 선교사를 통해 문명을 생전 처음 접하고 유럽을 방문한 사모아의 추장 투이아비가 원주민들에게 이야기한 내용을 담은 ‘빠빠라기’란 책이 생각난다. 옛날 그들의 섬에 최초의 문명인인 백인 선교사가 나타났을 때 한 처녀가 절벽으로 올라가 부채로 알몸을 가리면서 “재앙을 몰고 오는 악마들아, 가까이 오지 마라”라고 외쳤던 것처럼 투이아비 추장도 문명사회에는 재앙을 몰고 와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올 겨울은 유난히 따뜻했다. 동해안에선 때 아닌 오징어잡이가 한창이라고 한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다. 어느 환경학자는 “자연을 보존한 국가만이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투이아비 추장처럼 슬기롭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아쉽다. 꽃피고 새 우는 봄, 녹음이 우거진 여름, 낙엽이 떨어져 낭만이 넘치는 가을, 온 세상이 흰 옷으로 갈아입은 겨울…. 4계절의 축복을 받은 ‘삼천리 금수강산’ 우리나라의 자연은 우리가 후대에 물려줄 가장 아름다운 유산이다.

/임병석 수원 장안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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