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사골 우려먹듯 한다니까!” 농업인들은 진저리가 날 지경이다. 지난달 20일 서울 양재동 에이티 센터에선 ‘국민과 함께하는 농업인 업무보고’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쏟아져 나온 노 대통령의 일장훈시(?)는 그야말로 ‘농업인 경시’의 결정판이었다. 한·미 FTA 타결을 목전에 두고 암울해 있는 농업인들에게 청산유수처럼 터진 대통령의 말의 행간은 이렇게 요약된다.
“당신들이 발목 잡는 바람에 나라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어차피 경쟁력 없는 분야니 아무 소리 말고 양보해라.” 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은 틈만 나면 “개방화에 대비해 농업분야에 119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 아니냐”고 농업인들을 윽박지른다. “좀 가만히들 있으시오. 아~ 돈 준다니까~” 이런 뉘앙스다. 참여정부가 들어 선 지난 2003년 농업인의 날 행사에서 노 대통령이 언급한 ‘10년동안의 농업분야 119조원 투·융자’는 그러나 발표 직후부터 농업인들과 농업관계자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을 빚어왔다. 119조원이라는 돈은 원래 10년동안 들어가야 하는 농업 예산을 약간 웃도는 수준에 불과하다. 예상되는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하면 증액은 일부에 국한된 것이다. 그런데 일반 국민들이 듣기에는 정부가 마치 농업인들에게 국민이 낸 ‘피 같은 세금’을 자그마치 119조원이나 ‘더 얹어’ 지원한다는 오해를 하게끔 하고 있다.
짧은 지면에 농업분야 119조원 투·융자에 대한 실상과 정부의 자기기만에 대해 소상히 설명할 순 없지만 독자들께서 여러가지 정보매체를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그 ‘허구적 생색’을 금방 발견할 수 있다. 350만명의 농업인구가 77조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우리 농업은 안전한 먹거리 생산,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한 산업이다. 여기에 환경의 정화와 보호, 전통 지역사회와 문화 보존, 자연생태 균형 유지, 국민정서 순화 등의 공익적 가치들을 더하면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부분이 된다.
단순 경쟁력으로만 따질 수 없는 게 농업이다. 농업경쟁력 향상의 걸림돌은 오히려 획기·창조적 농정은 만들어 내지 못하면서 119조원, 119조원만 외치는 그들에게 있다. 대통령의 인식부터 이러하다면 119조원이란 말은 이제 ‘긴급 상황 119’로 들린다. 우리 농업은 ‘비상출동 119’에 다름 아니다.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하나니~”하며 농업인들을 복달하기 전에 “동이나 텄는지” 살펴보기 바란다.
/박용철 한국농촌지도자 경기도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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