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배의 씹는 맛

박용철 한국농촌지도자 경기도 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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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말과 80년대 초, 소위 ‘인도사과’가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푸른색의 껍질은 잘 익으면 레몬 같이 노랗게 변하며 손톱으로 살살 벗겨도 될만큼 육질이 연했다. 맛은 달콤했으나 씹는 느낌이 푸석푸석해 지금 사과시장을 평정하고 있는 후지(富士)나 홍옥의 사각사각한 질감은 느낄 수 없었다.

일본에 가서 김치를 먹어보면 우리나라에서 쓰는 재료를 그대로 넣어 만들었는데도 한국에서의 그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일본 배추가 우리나라 배추에 비해 덜 단단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된 배추 잎을 손으로 꺾어보면 파르르 탱탱하게 버티다 툭 부러지는 쟁쟁한 탄력이 느껴지는데 이것이 김치의 맛을 더욱 감칠 나게 만드는 요소다. 무 역시 마찬가지다. 물컹한 깍두기, 물러터진 동치미 등은 이미 그 맛이 반쯤은 달아나버린 것이다.

음식물의 질감은 손에서보다, 눈으로 느끼는 것보다, 입 안에서 극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동태보다 생태가 더 맛있는 건 그런 까닭이다. 음식재료 보관온도에 따라 씹는 느낌의 차이를 가져 오게 돼 맛의 차이가 나고 따라서 가격에서도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 나라 특유의 토양, 기후, 입지는 같은 품종의 농산물을 재배해도 이런 차이를 낳는다. 경기 배의 미국과 유럽시장 수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경기도는 지난 민선 3기 시절부터 농산물 해외 수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서구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설치했고, 민선 4기에 접어든 후 해외시장 공략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처음 서구시장에 진출한 우리 배는 그 쪽 소비자들의 오랜 입맛과 다소 거리가 있었다. 서구 소비자들은 우리가 좋아하는 아삭거리는 맛보다 다소 무른 상태로 숙성된 것에 익숙하다. 우리가 선호하는 큰 배(대과)보다는 껍질 채 먹을 수 있는 작은 배(소과)를 선호하고 있다. 따라서 배를 수출할 때는 보름 정도의 수송기간 동안 숙성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런데 서구 소비자들이 점차적으로 우리 배 특유의 아삭거리는 씹는 맛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한다. 이 입맛의 미묘한 변화는 다른 어느 나라 배보다 식감(食感)이 우수한 우리나라 배의 입지를 바꿔놓고 있다. 우리 음식의 매운맛이 중독성이 있는 것처럼, 우리 배의 식감, 특히 절묘한 느낌의 씹는 맛은 풍부한 과즙이 주는 청량감과 함께 세계 과일시장을 석권할 수 있는 ‘입 안의 한류(韓流)’로 떠오르고 있다.

/박용철 한국농촌지도자 경기도 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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