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생의 머리를 묶도록 지도하던 교사가 학생한테 얻어맞았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교사이기도 했던 박재동 화백은 일탈학생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그들과 소통했다고 한다. 박재동 화백과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모 교사는 최근 모든 수업시간에 종일 자는 학생을 깨우려다 귀에 담지 못할 욕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학생을 지도하던 교사는 학부모로부터 뺨을 맞고 돈을 요구받기도 했다. 담배를 피우는 학생을 지도하다가 학생에게 얻어맞은 교사는 학부모 협박으로 우울증에 걸린 뒤 끝내 학교를 옮겼다.
교권수호를 외치던 교육부나 교육청은 어디로 갔나? 교권이 침해되어도 대부분의 학교는 ‘쉬쉬하며’ 은폐하고 침묵하기에 바쁘고 교사에게는 ‘확대되면 좋을 것이 없다’며 학부모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을 강요한다. 합리적인 상담이나 갈등해결은 실종되고 폭력적 행동이 늘어나도 이를 제재할 수단이나 보호 장치가 없는 학교 현장에서, 선생님들은 오늘도 추락하는 교권 앞에 절망한다.
교문 앞에서 멈추는 것은 학생 인권이라고 큰 차이가 있을까. 일부에서는 학교장의 말 한마디가 두발단속의 기준이고 등교시간이 된다. 학생의 건강권을 위해 도교육청과 교원노조가 어렵게 맺은 0교시폐지라는 단체협약도 무시되기 일쑤다. 좁은 교실에 40명 이상이 하루 15시간을 앉은 채 정규수업에 강제 자율학습까지 하고 휴무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등교한다. 이것이 ‘1명의 천재가 2만명을 먹여 살린다’거나 ‘글로벌 인재’를 목표로 교육한다는 대한민국 학교의 우울한 현장이다. 마냥 학습시간을 늘리기만 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환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마저도 봉쇄당한 현실에서 아이들은 입을 다물고 만다.
지난해 일본의 교원노조를 방문했을 때 교사들이 하는 가장 많은 질문은 “학생들의 탈학교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다. 일본은 교권을 지키면서 아이들의 탈학교와 등교거부에 대한 대책이 사회적 관심사가 되었다.
학교의 주인인 학생과 교사가 배려 받거나 존중받지 못한 채 갈등의 현장에 방치되는 일이 계속된다면 이는 우리 모두의 불행이다. 타율 대신에 합리적이고 민주적이며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보장하는 학교, 폭력과 불신 대신 배려와 신뢰로 소통하여 교권과 학생권이 지켜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와 구체적인 법적 장치가 적극 모색되어야 한다.
/유정희 전교조 경기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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