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어느 일간 신문에서 읽은 시 한편이 문득 생각난다.
“신발 문수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날부터 / 하나둘씩 내 곁을 떠난 친구여/ 하나 둘씩 내 곁을 떠난 꿈이여.” 제목이 뭔지 누가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시구가 정확한지 모르지만, 여하튼 나이듦의 미학(美學)을 정말 잘 그려낸 시임에 틀림없다.
나이가 든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첫번째 의미는 아마도 상실이 아닌가 싶다. 여러분은 생명처럼 소중히 했던 친구나 연인, 또는 가족 등을 어느 날 갑자기, 더 이상 이 지상에서 만날 수 없게 되는 생사(生死)의 아이러니, 그 황당함의 극치 앞에 가슴 저미어 본 적이 있는가? 전쟁통에 어린 나이로 부모와 헤어진 후 반세기 동안 몽매에도 그리던, 북에 계신 부모님이 더 이상 살아계시지 않는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은 백발의 실향민의 아픈 가슴도 바로 상실감일 터이다.
그런데 나이듦의 의미에는 상실 밖에 없을까? 나이가 든다는 건 엄연히 자연의 섭리인데, 자연의 섭리에는 상실 밖에 없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떠나 보내는 것도 있지만 새로이 얻게 되는 것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는 건 무엇이고 잃는 건 무엇일까? 지난달 천자춘추 란을 통해 ‘두개의 세계’에 대해 말한 바 있지만,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는데 삶의 한 부분이 된 모든 건 떠나 보낼 수 밖에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해 삶의 한 부분으로 창조한 건 모두 떠나 보낼 수 없는 것들이다. 지금도 시간은 우리 곁을 계속 떠나고 있다. 우리의 선택이나 자유의지와는 관계 없이….
그래서 봄이 가고 다시 여름이 왔다. 더운 여름 피서지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산과 강, 바다 등지를 바라보며 우리가 미련 없이 떠나보내야 할 건 무엇인지, 떠나보내지 말아야 할 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왔다. 가야 할 것은 가야 하고, 남아야 할 것은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홍 성 훈 여주대학 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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