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말버릇

조 창 환 아주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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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을 보니 결혼 5년 이내의 젊은 부부 가운데 3분의 1은 아내가 남편을 ‘오빠’라고 부른다고 한다. 결혼한 지 20년 이상 된 나이든 부부 가운데 15%는 남편이 아내를 ‘어이’ 하고 부른다고도 한다. 이런 통계를 말하면서 사회자나 출연자 모두 즐겁게 깔깔 웃는 것을 보면 이런 이상한 말버릇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투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건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아내가 남편을 ‘오빠’라고 부른다면 정작 친오빠는 무어라 불러야 할까?

결혼 전에는 자기보다 조금 나이 많은 남자친구를 친근한 감정으로 ‘오빠’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고 난 후에는 절대로 그런 호칭을 쓰면 안 된다. 이런 말투를 한국어에 서투른 외국인이 듣는다면 이 나라 사람들은 친형제 간에도 잠자리를 같이한다고 생각할 것 아닌가? 아내를 ‘어이’ 하고 부르는 것도 문제다. ‘여보’라든지 ‘아무개 엄마’라고 불러도 될 걸 왜 ‘어이’ 하고 부르나?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는 투의 이런 말버릇도 고쳐야 한다.

우리말의 오염과 비속화는 심히 걱정스러울 정도다. 말과 글의 올바른 사용을 선도하고 아름답고 품위 있게 가꾸어나가야 할 신문이나 방송이 오히려 언어와 문자의 오염과 비속화를 조장하는 사례가 많다. 이상한 외래어와 상스러운 비속어를 남발하는 영화나 티브이 오락프로 등의 영상매체는 한국어의 품위를 떨어트리기 위해 앞장서는 것 같다. 바른 문자생활을 이끌어야 할 신문에서 오히려 더 자극적이고 저질스러운 용어나 문장을 골라 쓰는 일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예컨대 ‘일 대 일 토론’이라고 하면 될 걸 굳이 ‘맞장 토론’이라고 제목을 뽑는 심리의 저변에는 자극적인 말투로 젊은 세대의 입맛에 맞추려는 태도가 뚜렷하다. 깡패 두목들 편싸움도 아니고 동네 아이들 골목대장 뽑는 일도 아닌 대통령 후보들의 일 대 일 토론을 맞장 토론이라고 하는 세상이니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엔 틀림없다.

하기야 이 나라 대통령이라는 분은 전 국민이 보고 듣는 공식석상의 연설에서 ‘쪽 팔린다’고 하는 판이 아닌가? 친한 친구들하고 술 마시는 자리에서도 그런 말본새는 삼가야 할 터인데 왜 그럴까? 아마도 바르고 품위 있고 아름다운 언어는 지식인 계층이나 가진 자들의 위선과 가식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있거나, 험하고 천하고 속된 말을 씀으로써 못 배우고 못 가진 자들과 한 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려는 계산속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기의 태도에는 인격이나 지성이 은연중 반영되는 것 외에도 음험한 계산속이 깃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조금도 친한 것 같지 않고 틈만 있으면 상대를 깎아내리려 하면서도 말끝마다 ‘우리 아무개 의원’이라고 말하는 국회의원의 말투에는 어깨동무하고 뒤통수치겠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고, ‘사랑합니다. 고객님’ 하는 114 안내원의 말투에는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친절로 분위기를 잡아보겠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인터넷 언어의 거칠고 속되고 질 낮은 말투는 우리 시대의 풀기 어려운 골칫거리다. 말하는 이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익명성, 만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즉흥성과 단편성, 상업주의의 선정적 자극과 폭력적 스타일에 물든 사람들의 과격성은 물불 가리지 않는 험하고 천하고 상스러운 언어를 쏟아낸다. 현대판 이두문자 같은 국적불명의 외국어나 한자를 아무렇게나 조합하여 만든 광고문안 등을 보면 세상이 어지러운 것이 아니라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들의 말버릇과 말본새가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조 창 환 아주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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