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의 교훈

김 병 모 고려문화재연구원장 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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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걸프 전쟁이 터진 날 필자는 네팔에 있었다. 힌두교 국가인 네팔의 카투만두 공항에서 태국 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 승객 모두가 전쟁 발발로 침울한 분위기였다. 그 때 한 무리의 동양인들이 공항 청사 내에서 합창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20대의 한국 사람들이었다. 알고 보니 어느 종교단체가 보낸 젊은이들 이었다. 갑자기 전쟁이 나니까 급거 귀국 중이라고 하였다. 공항에서 큰 소리를 내는 것 자체도 예의에 어긋난데 주변에 가득한 힌두교도들을 무시하는 태도가 옆에서 보기에 매우 민망하였다.

누가 이 젊은이들을 이토록 무례하게 만들었는가. 국제사회의 기본적 예의도 익히지 못한 채 봉사활동에 나가고 현지의 문화도 자세하게 모르는 채 현지인을 상대로 봉사활동을 한들 그 효과가 얼마나 될까. 그들을 보낸 지도자의 부족한 자질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자식을 길러서 독립시키려면 가정교육이 엄하고 사회적 훈련이 철저해야 한다. 자식이 못되면 부모가 부끄러운 법이다.

탈레반에 억류되었던 젊은이들이 대부분 구출되었다. 참 다행한 일이다.

이번 억류된 한국인들이 이슬람 국가에 들어가서 봉사활동을 하도록 한 교회를 중심으로 정신세계의 지도자들이 이 사건을 잘 분석하여 향후로는 유사한 실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겠지만 그 대책은 즉흥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계속되는 이런 사건들이 발생하는 원인은 타 민족의 문화에 대하여 너무 무지하다는데 있다. 아니 우리나라의 세계문화에 대한 교육 전체가 너무 허술한 것이다.

지구상에서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국가의 수는 57개국에 달한다. 그 인구를 모두 합하면 14억명이나 되어 지구 인구의 4분의 1이나 된다. 그들의 분포는 중동과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유럽, 중국, 미국은 물론 한국도 포함되어 있다.

이미 천 년 전에 십자군 전쟁이 있었다. 그때부터 9·11까지 경제와 종교는 한데 어우러져 지구촌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그 이유를 분명하게 제도권 교육에서 주입해야 할 것 같다.

신앙은 누구에게나 좋은 것이다. 그러나 나의 신앙, 나의 사상만이 옳은 것은 아니다. 각자의 생각, 각자의 인격이 고루 존경되어야 세련된 사회가 된다. 그런 사회가 되려면 초등교육부터 다시 시작해야 될 것 같다. 세상에는 무수한 민족과 국가들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한다. 또 지구상에는 여러 가지의 습관과 종교가 공존해야 한다는 것도 가르쳐야 한다. 우리 세대가 학생이었을 때도 세계문화사에 대하여 좋은 교과서가 없었다. 그렇게 허술한 교육과정을 통해 우리는 성장하였다.

이번 사건이 났을 때 한국사람 중에 그 지역 전문가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구출과정에서도 국제적인 실수가 노출되어 여러 나라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었다. 이번 일처럼 뺨 맞고 흉잡히는 사건이 또 다시 반복되지 않으려면 지역 전문가를 길러야한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지구상의 여러 국가에 가서 훌륭한 인격자들을 만나보고 품위 있게 성장하고 있는 젊은이들과 대화를 해보아야 한다. 우선 어른들부터 세계문화에 대하여 새롭게 공부를 시작해야 될 것 같다. 유네스코의 21세기 화두는 세계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교육이다.

우리세대의 부실한 교육의 결과로 희생된 젊은이들에게 조의를 표한다.

김 병 모 고려문화재연구원장 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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