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등학생들의 학교생활은 무척 힘들어 보인다. 이른 아침부터 등교해 수업을 받아야 하고, 일과 후에는 늦은 밤까지 자기 주도 학습을 해야 한다. 자기 주도 학습이 끝난 이후에도 자습실에 남아 자정이 지나도록 책을 보는 학생도 있고 부족한 공부를 메우려 학원으로 달려가는 학생도 있다. 곧장 귀가한 학생들도 바로 잠자리에 드는 경우는 드물다. 겉으로 볼 때 학생들은 불행한 것처럼 보인다. 어깨가 축 늘어져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학생들을 만나보면 그렇지 않다. 언제나 밝고 환하다. 순수하다.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들의 힘찬 발걸음에는 간밤의 피곤은 묻어 있지 않다. 하루 공부를 마치고 하교하는 학생들이 왁자지껄한 소리에는 활력이 넘친다.
아마도 학생들은 어디선가 무한한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 에너지의 원천은 어딜까? 그것은 아무래도 ‘새로운 것을 깨닫고 알게 되는데서 오는 기쁨’에 있을 것 같다. 학생들은 하루 종일 인류가 역사 이래 쌓아올린 지적 창고를 뒤적거리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간다. 그 설레임과 기쁨이 그들을 행복하게 한다. “아, 이런 것도 있었네.” 또는 “음, 그래서 그랬었군”하며 기쁨을 느낀다. 어떤 학생들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넘어 더 높은 산, 더 깊숙한 오지까지 탐사에 나서기도 한다. 그러다가 때로는 벽에 부딪쳐 사투를 벌이는 날도 있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과 인간이 엮어낸 사회, 문화, 그리고 자연현상, 예술 등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다. 학교에서 배우는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등의 교과들은 인류문화유산을 정치하게 편제한 것의 다름이 아니다.
공부의 과정이 힘들고 고통스러울수록 성취가 주는 행복감은 커진다. 성취에 대한 포만감은 자신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고 앞날에 더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학창시절을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부가 싫은 학생들도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 학생들 역시 깨닫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도록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무엇인가를 하루도 놓치지 않고 알게 되는데서 오는 지적 희열, 그것이 바로 학창시절 학교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불행할 것 같아도 그들의 눈은 행복으로 반짝거리는 것이다. 학생들은 진리를 찾기 위해 고행을 자처하는 수도승처럼 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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