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 학생들 아무나 바나나 우유를 마실 수 있으면, 서로 먼저 마시려고 경쟁해 우유는 금방 동이 난다. 이 때 양보심이 없다고 비난하기보다는 각자에게 하나씩 나눠주면 된다. 이는 아이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어른들도 누구의 것도 아닌 세금을 먼저 쓰려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 결과 이용객이 없는 공항이 지어진다.
그래서 한 경제 내에, 각자 알아서 할 수 있는 일을 공동세원을 통해 해결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자본이 낭비되고 모두 가난해진다. 그래서 도로 등의 시설에 관한 결정도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방정부가 재정분권과 자기책임 하에 수행하는 것이 좋다. 지방정부가 해당 지역에 적절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해 경제가 잘될수록 더 많은 ‘우유’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런 공공지출의 비효율성은 비교적 이해되고 있으나 이것이 갈등을 야기한다는 점은 별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 정부재정의 지원을 받으므로 돈벌이에 급급할 필요가 없는 학교가 사설학원에 비해 인내심 배양과 같은 목표를 더 잘 추구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인내심 배양을 위해 어떤 사설학원에서는 체벌이 행해지지만 학부모의 환영을 받고 있고 학교체벌은 소송까지 빚고 있다.
왜 이런 역설적 현상이 발생할까? 대답은 간단하다. 적당한 체벌이 자녀들에게 좋다고 여기는 학부모들만 그 학원에 자녀들을 맡기지만, 준(準)공공기관인 학교에는 체벌에 대해 견해가 다른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보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체벌을 금지하면 갈등이 없어질 것 같지만, 이는 적당한 체벌이 자녀들의 훈육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똑같이 학교재정에 기여한 납세자들을 무시하는 처사가 된다.
그래서 갈등요인을 최대로 줄이려면, 정부재정지출은 되도록 민간이 담당할 수 있는 분야를 배제하고 또 특별히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 이를 무시할 때, 내재된 갈등이 폭발한다. 아담 스미스는 사회를 건물에 비유해 정의는 기둥이고 자비는 장식이라고 설파했다. 자선을 적게 베푸는 사회는 유지될 수 있으나, 사람들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여기는 배분이 이뤄지는 사회는 붕괴한다. 심지어 도둑의 사회마저도 훔친 물건을 구성원들이 분개하는 방식으로 배분해서는 성립될 수 없다.
정부는 최근 2단계 균형발전방안을 내놓았다. 균형발전정책은 세금으로 낙후지역에 더 많은 재정투자를 하는 ‘강제적’ 자선을 베푸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선의 시행에도 정의의 원칙이 필요하다. 공익을 내세운 규제에 따라 피해를 본 지역을 우선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단계 균형발전방안은 국방·상수원 보호 같은 공익을 앞세운 명분으로 토지이용에 중첩적인 제한을 받고 있는 경기북부 주민들을 차별해 분노를 사고 있다. 이 방안은 원래 기준으로는 정체지역으로 분류되던 팔당댐 지역의 양·가평을 경기도에 소재한다는 이유로 부산과 같은 성장지역으로, 또 남양주시와 여주군을 강남구와 같은 발전지역으로 분류하고 또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토지이용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동두천, 연천, 포천 등을 부산과 같은 성장지역으로 분류했다. 낙후지역 재정투자에서 이 지역들을 지속적으로 배제하려는 것이다.
사실 공익적 명분이 그 지역 낙후의 한 요인이 되고 있으므로, 정부는 공익과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 간에 균형을 맞추기 위한 보상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일일이 보상하기 어렵다면, 세금을 재원으로 한 재정투자에서 우선적으로 이 점을 고려하는 것이 순리다. 그런데 정부는 오히려 2단계 균형발전방안에서 이들을 더 불리하게 차별하고 있다.
정의의 여신은 장님이다. 정의의 여신 앞에서 판정을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권력자인지 아닌지, 혹은 부자인지 아닌지, 아예 알지 않기 위해서다. 지역균형발전정책이 최소한의 정의 원칙에 부합하려면, 재정지원 규모를 결정할 때 정의의 여신 앞에 선 사람이 경기도 사람인지, 강원도 사람인지, 혹은 충청도 사람인지 알 필요가 없어야 한다.
우리가 합법적으로 세금을 거두고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부를 만든 것은 무엇보다 정부로 하여금 우리의 재산권을 외국이나 타인의 침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렇게 재산권에 중첩된 규제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균형발전을 추구한다면서 이 낙후지역들을 차별하는 것은 너무 몰염치한 짓이 아닐까? 왜 불필요하게 규제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분노케 하고 갈등을 증폭시키는가?
김 이 석 경기개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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