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0년 보이저 2호는 태양계를 벗어나기 직전 지구 사진을 찍어 보냈다. 지구가 광활한 우주 공간에 마치 먼지 한점처럼 떠서 태양빛을 받고 있는 사진이었다. 미국의 저명한 행성 연구자인 칼 세이건(Carl Sagan)은 바로 이 사진에서 깊은 영감을 받아 ‘창백한 푸른 점’이란 책을 썼는데, 창백한 푸른 점이란 바로 보이저 2호에 비친 작고 초라한 지구의 모습을 말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광대한 우주 공간에서 지구와 인간 종족의 아주 작지만 정확한 위치를 통렬히 지적한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인간 종족은 이 땅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주는 ‘창백한 푸른 점’, 그러니까 작고 볼품없는 하나의 행성에 불과한 지구를 위해, 그리고 그 지구에서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인간 종족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중세 암흑기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천동설이 널리 퍼지면서, 우주는 지구상의 수백만종의 생물 중 유독 인간 종족만을 위해 창조돼 존재하는 것이라는 지극히 지구 중심적이고 인간 종족 중심적인 패러다임이 학문과 문화와 예술 등 모든 영역들을 지배했었다. 그리고 이런 패러다임은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자기중심주의로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이 지구 상 어디선가는 대립과 갈등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다. 중세 암흑기의 자기중심적 패러다임이 21세기인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셈이니 어찌 하면 좋은가? 지상의 모든 갈등과 분쟁의 씨앗은 바로 자기가 세계의 중심이고 자신만이 옳다는 편견이라고 본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듯, 이 지구상의 어느 개인, 나라, 민족, 종교, 문화 등도 이 땅의 주인이나 중심이 될 수 없는데….
우린 모두 ‘창백한 푸른 점’ 위에 함께 태어나, 너나 할 것 없이 주인 아닌 손님으로 잠깐 머물다 갈 나그네 같은 존재들이다. 그런데 함께 어울려 공존과 동행의 길을 나아갈 방도가 그리도 없다는 말인가? 아름다운 달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적어보았다. 모두들 명절 잘 지내셨는지요?
홍성훈 여주대학 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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