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와 문화정책

이 진 배 의정부예술의전당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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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가 성큼 눈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신문과 방송 등은 새로운 대통령 후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도하기에 점점 더 바빠지고 있다. 그러나 막상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정책과 관련해선 극히 개론적이거나 다분히 구호성인 언급에 그치고 있다.

십수년 전 호주의 호크 수상을 뽑을 때, 세율 1%의 증액이 경제·사회와 국민생활에 미칠 영향을 마치 양파 껍질 벗기듯 갑론을박하는 것을 보고 “바로 이런 게 선거쟁점이고 정책대결 선거이구나”라고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대통령선거 때마다 정책선거의 중요성이 거론되는 것을 보았고, “이번 만큼”은 하고 기대했으나 매번 그 기대는 하릴 없는 물거품으로 끝났음을 기억하고 있다. 정략성 폭로에 폭로가 뒤를 잇고, 끝내는 검은 폭로의 흙탕물 속으로 모두 가라앉아 버리거나 민주·통일과 같은 거대담론에 험산 준령 넘듯 애매모호하게 끌려가다 분간하지 못할 안개 속으로 헤맨 일들이 많지 않았나 싶다. 그런 과정을 되풀이 하며 우리는 우리의 미래와 생명과 재산, 우리의 일상적 삶과 그 삶의 질을 책임지는 대통령을 무책임하게 뽑아 왔다.

이제 그런 대통령선거를 또 다시 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는 이 세상 돌아가는 게 너무나 숨 가쁘기 때문이다. 분단이라는 구시대 질서의 무거운 짐을 지고,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세계질서 변화에 대처해 나가야 하는 우리의 현재 모습이 참으로 위중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달 탐사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고 일본이 새로운 경제도약의 길로 접어 들고 있다. 인도가 신흥 경제대국의 꿈을 현실화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연합과 미국 등은 선점한 선진국 기득권을 지속화하는데 국력을 집중하고 있다. 새로운 세계질서 징조들이 한결 분명해지고 있다.

세계의 석학들이 이같은 새로운 세계질서를 오래 전부터 예고해 왔고 이들 석학들은 새로운 세계질서를 이끌어 갈 역학관계가 문화의 힘에 의해 좌우될 것임을 설파해 왔다. 21세기 국가 경쟁력은 각국의 창의성에 달려 있으며 창의성은 문화의 힘으로부터 나온다는 게 공통적인 정설이다.

이미 지난 2000년을 전후한 새천년의 문턱에서 ‘창의 미국’이나 ‘창의 영국’ 등이 국가 핵심정책으로 천명됐고 다른 선진국들도 속속 이같은 흐름에 합류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4년 두툼한 분량의 ‘창의 한국’을 공표한 바 있다. 지난 2004년 발표된 ‘창의 한국’이 다른 나라들과 다른 건 ‘창의 미국’이나 ‘창의 영국’ 등이 구체적이고 실용주의적 정책 추진과제를 천명하고 있는 것과 달리 분배적 평등주의의 이념적 편향성이 강한 문화복지 비전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창의한국’의 비전과 방향 등은 참여정부의 문화정책의 길잡이이기도 하다. 실제 정책에 있어 ‘예술의 수월성’을 창의성의 원천으로 보기 보다는 지역적 균형과, 소외, 나눔 등 사회적 ‘문화참여’를 정책수행의 우선 과제로 추구해 오고 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국민의 정부의 문화정책은 IMF사태 이후 경제논리가 풍미하는 가운데 문화산업에 정책의 중점이 주어졌다. 그리하여 지난 10년 동안 문화의 품격을 끌어 올리고 경제적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문화력의 원천인 ‘순수예술의 수월성’은 뒷전으로 밀리게 됐다. 물론 문화산업과 문화복지는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될 정책과제이다. 그러나 문화산업과 문화복지는 ‘고품격 문화’와 ‘예술의 수월성’을 기본으로 할 때 비로소 온전하게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일류 선진국 진입의 필요충분조건인 ‘고품격 문화’와 ‘예술의 수월성’ 등은 ‘창의한국’의 올바른 지향점이며 인간존중의 자유민주주의 가치관을 성숙시켜 주는 자양분이기도 하다.

앞으로 5년 동안 이 나라를 이끌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문화정체성 등을 굳건히 지켜내면서 국가경쟁력을 극대화할 ‘문화 대통령’이어야 한다. 따라서 이번에는 정신적 가치와 창의성의 고양으로 국민적 통합과 국가 경쟁력 등을 일궈 낼 문화정책과제가 안보·경제와 함께 선거의 주요 쟁점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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