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2007년도 이제 저물어 가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2007년은 대선을 눈앞에 두고 있어서 그런지 온 나라가 말 그대로 선거 정국에 휩싸여 있는 느낌이다. 정치와는 별 관계가 없어야 할 대학들도 올 연말과 내년 연초는 정치적 변수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선정 문제 때문이다. 지난 11월30일 오후 6시 전국 41개의 대학의 법학전문대학원 설치 신청서가 마감됐다. 이제 남은 일정은 정부가 각 대학별 132개 항목의 500여쪽 분량에 이르는 설치인가평가보고서에 대한 서면평가와 현장 조사를 한 후 1월 말께 예비인가를 내리는 일만 남았다. 각 대학들은 그야말로 시험 답안지를 제출하고 채점만을 기다리고 있는 처지다. 그런데 문제는 시험결과의 평가 순위가 한 반 전체로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 분단별로 매겨진다는 것이다.
이미 정부는 법학전문대학원 선정에 있어서 전국을 5개 권역(서울, 대전, 대구, 부산, 광주)으로 나누고 권역 별로 인가신청서 항목 평가점수 순으로 결정하겠다고 공지한 바 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전국의 대학을 일괄적으로 경쟁시키면 수도권 대학들이 유리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지역균형발전을 명분으로 내세워 5개 권역으로 나눈 것이다. 지역균형을 고려한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인가 배분방식의 선정은 지난 9월20일 김천혁신도시 기공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로스쿨 설치 때 지역균형발전을 1차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 취지가 법학전문대학원 설치 및 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5조에 반영됐고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를 근거로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인가 기준에 지역균형을 반영하면서 경기도, 인천, 강원은 서울권역에 포함시켰다.
전국을 5개 권역으로 나눈 근거는 고등법원 소재지이다. 그러나 이처럼 고등법원 소재지 만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 권역을 구분한 것이 합리적인지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고등법원 설치의 기준은 기본적으로 사건수이며 이는 해당 지역의 인구수와 직결한다. 경기도는 서울보다 인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고등법원이 있는 서울에 가까운 이른바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고등법원이 설치되고 있지 않다. 고등법원이 없어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음에도 다시 이를 근거로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에도 불이익을 받는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본인이 학장으로 재직 중인 아주대학교는 경기도, 인천, 강원을 통틀어서 사법고시 합격자수가 가장 높은 대학이자 규모면이나 질적인 면에서도 서울 및 전국의 대학들과의 경쟁에서 법학전문대학원에 유치에 강한 자신감을 지니고 있는 학교다. 그러나 문제는 아주대학교는 전국의 대학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41개 대학 중 가장 경쟁이 치열한 서울 소재 대학들과 경쟁하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단 2개 대학만 신청한 대구, 경북을 별도 권역으로 설정한 점을 상기해 보면 지극히 모순된다는 결론을 쉽게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지방 국립대학들을 중심으로 지방에 더 많은 정원을 배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며 정부 내에서도 반반에 가까운 배분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지역균형이라고 할 때에는 인구수나 경제적 수준과 해당 관련 분야의 수요, 예컨대 법학전문대학원의 경우에는 소송사건 수 등 최소한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합리적인 근거 없이 정치적인 고려만이 우선돼서는 안 된다. 만일 지역균형의 기준 또는 권역 배분의 기준이 인구수라면 당연히 경기도에는 서울권역의 절반에 해당하는 정원이 할당돼야 할 것이다. 한반의 5개 분단이 있는데 한 분단은 24명이 있고 다른 분단들은 2·4·5·6명이 앉아 있다. 그런데 분단별 학생 수는 고려하지 않고 평등한 배분을 주장한다면 이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제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골고루 발전되는 것을 반대하는 국민은 없다. 단지 한쪽을 무리하게 억눌러서 다른 쪽을 발전시키려고 하는 방법론이 국민들의 저항을 사고 있는 것이다.
백윤기 아주대 법대 학장·전 법무법인 두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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