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아고라 광장에서 …

최운실 아주대 교수·교육연구소장 한국평생교육총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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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그리스 아테네를 찾았었다. 10여년 만에 다시 찾은 그 곳 아테네에서 신전들의 언덕에 올라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장터였던 아고라(Agora) 광장을 내려다 보며 문득 ‘아고라 상념’에 사로잡혔었다.

그랬다. 옛 그리스의 아테네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교실이었기에 아고라는 단순한 장터가 아니었다. 그리스인에게 있어 아테네에서의 삶은 ‘삶 살이’ 그 자체가 하나의 리얼한 배움의 과정이었다. 그들은 아고라 광장에 모여 서로 어깨를 기대고 대화를 나누었고 토론을 즐겼으며 때론 열변을 토하며 웅변에 취하기도 했다. 그런 지적 향연과 배움의 터전이 바로 아고라였고 그렇기에 아고라는 자유로운 삶을 영위했던,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사람들의 살아 있는 배움터였던 것이다.

아고라에서 필자는 그간 교육 현장의 치열함 속에 몸담으며, 잠시 소원하게 접어두었던 ‘배움’의 참 의미에 대한 상념을 떠올리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서로 서로 배우고, 서로 서로 경험을 나누며, 서로 서로 가르침으로써, 단순한 의사소통을 넘어 ‘의식의 소통’, 나아가 ‘지혜의 소통’과 ‘인간의 소통’이 가능한 ‘식자(識者)와 현자(賢者)’로 성장하는 과정이야말로 참 배움의 모습이었다. 당시 그리스의 ‘schole’라는 말은 여유롭고 한가한 시민들이 모이는 토론과 학습의 장이라는 의미였다. 이 단어가 바로 오늘날 학교라는 ‘school’의 어원이었음은 교육과 학습의 본래적 의미가 지금의 타율적 경쟁 위주 입시교육과는 사뭇 다른 ‘열린 학습과 열린 교육’의 의미였음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아고라에서 당시 그리스인들이 추구했던 이상적 교육과 배움의 본질에 대한 생각을 그려보며 ‘교육의 가막소’라고까지 자괴적으로 일컬어지는 우리 교육의 일그러진 단상들이 그려졌다. 성적이 모든 것의 면죄부가 되는 우리 교육의 슬픈 현실과 어느 교사가 썼던 교단일기 속의 ‘막가파 아이들, 악에 받친 교사들’이란 슬픈 제목이 연상되었다.

닫힌 교육의 온상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우리의 학교들, 그들의 0교시 수업과 야간 보충수업, 수업은 밤에 과외와 학원에서 하고 낮에 학교에서는 영영 졸고 있는 아이들, 그 속에 ‘나 홀로 수업’을 하고 있는 교사들, 푹푹 시들어가고 있는 지친 아이들 그들의 소리 없는 분노가 학교폭력과 집단 따돌림과 청소년 비행 일탈로 마치 활화산처럼 번져가는 우리 교육의 일그러진 자화상들이 아픔으로 떠올랐다.

일류대학 입학과 고 연봉의 일류 직장 취업이라는 세속적 출세와 사회적 성공의 도구로 전락해 버린 ‘졸부 교육’의 초라함도 떠올랐다.

현금의 이런 교육풍속도에 그리스의 아고라 광장은 말없이 외치고 있는 듯했다. 그건 길이 아니야, 그건 참 배움이 아니야, 참 교육이 아니야 라고….

아고라 광장의 소리 없는 외침을 뒤로하며 필자는 그래도 그 끝자락에서 “여전히 우리 교육은 희망이야”를 메아리로 외치고 싶었다. ‘비전 2030’ 미래 교육 리포트가 그렸던 ‘직업적 경계를 횡단하는 신 학습유목민’으로서의 우리들의 저력을 믿고 싶었다. 그 학습의 열정에 다시 불을 지펴 우리 교육의 곳곳에 ‘참 배움의 아고라’가 부활할 것을 희망으로 확신하고 싶었다.

최운실 아주대 교수·교육연구소장 한국평생교육총연합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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