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십대들이 잘 쓰는 말로 ‘쿨 하다’는 표현이 있다. 예컨대 “그녀는 쿨 하다”는 말은 “그녀는 재미있다”, “그녀는 패션 감각이 있다”, “그녀는 재주가 있다” 등 상황에 따라 매우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다. 어떻게 ‘쿨’이라는 단어에 이 많은 의미가 붙게 됐을까?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의 이해’(박정규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007)에서 이런 설명을 했다. 누가 어느 젊은이에게 “왜 너희 젊은이들은 핫(hot)이라는 말 대신에 쿨(cool)이라는 말을 쓰느냐”고 물었다. 그는 “우리가 핫이라는 말을 쿨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이유는 우리가 핫이라는 말을 쓰기 전에 당신들 기성세대가 그 단어들을 다 써버렸기 때문이지요”라는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열띤 논쟁(hot argument)’이란 온몸을 던져 논쟁에 관여하는 것을 뜻했다. 반면에 ‘냉정한 태도(cool attitude)’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태도를 지칭했다. 하지만 우리시대 십대는 ‘쿨’이라는 말을 예전의 ‘핫’의 의미로 쓰는 경향이 있다. 기성세대와 기득권 세력에 대한 십대의 반항이 이 같은 ‘쿨’과 ‘핫’ 사이의 의미의 전도를 초래한 것일까.
정부의 어법대로라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이기 전에 ‘냉정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여기서 ‘냉정한’이란 ‘공정한’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청계광장의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고 있는 십대들이 보기에 그런 ‘공정한’이란 정부, 대기업, 보수언론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이에 반대하는 십대들은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문제를 그야말로 ‘쿨’ 하게 접근하고자 한다. 십대들은 “사람의 전능력(全能力)에 관여하는 상황에 있어서의 참여나 연루를 뜻한다”는 의미로 ‘쿨’이란 말을 사용한다는 것이 맥루한의 설명이다.
어떤 계기로 ‘쿨’이 ‘핫’의 의미를 함축하게 됐을까. 무엇보다도 우리의 지식기반이 디지털 환경으로 바뀐 정보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그렇게 됐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서기 2000년 이후에는 인류가 보유한 모든 지식의 양이 73일 마다 계속 두 배씩 가속도가 붙어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시대 초등학생은 이전 시대 할아버지가 한평생 습득했던 지식의 양의 몇 곱절을 접한다. 농부가 씨 뿌리고 추수하듯이 직접 정보를 생산해야 하는 시대에서는 ‘노하우(know-how)’가 중요했지만, 이전 수렵시대의 사냥꾼처럼 정보를 찾아 인터넷을 헤매는 정보화 사회에서는 ‘노웨어(know-where)’로 강조점이 바뀌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우리는 정보의 홍수에 빠진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정보의 부재가 아니라 오히려 정보의 과잉이 문제가 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요청되는 마음가짐이 ‘쿨’이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정보를 소통할 때는 인간관계가 중요했다. 그의 표정과 말투가 그가 말하는 내용의 진실을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였다. 오프라인에서의 미디어는 메시지 전달의 도구였을 뿐이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는 맥루한의 유명한 말처럼, “미디어가 메시지다”. 본래 인간의 입과 귀의 확장으로 생겨난 미디어가 컴퓨터를 매개로 하여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가상공간을 창조함으로써, 인간이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영화 ‘매트릭스’가 보여주는 상황으로 우리 현실이 점점 바뀌고 있다.
이같은 현실에서 우리의 젊은이들이 ‘비디오 키드’나 ‘컴퓨터 키드’와 같은 일종의 기계인간으로 전락할 것인가. 필자는 청계광장에 모인 십대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어른이 저지른 실수를 냉정하게 따지고 열정적으로 항의하는 촛불문화제를 벌이는 그들은 ‘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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