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소방법’ 불씨 키우나
9년전, ‘화성씨랜드’ 화재 이후에 행정당국은 청소년보호정책을 강화하고 수련원 시설의 소방법 및 건축법을 개정하는 등 제2의 참사를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당시 정부는 사건의 초점을 단순한 화재에 두지 않고 업자의 탐욕 및 공무원 비리, 어른들의 안전불감증 등이 복합적으로 일으킨 사회 구조적 문제라고 진단, 이에 대한 다각적인 대책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경기도내 곳곳의 청소년수련원이 불법으로 건축물을 짓고 소방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행정당국의 대책이 미봉책에 그쳤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더욱이 일부 수련원을 중심으로 관계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건축물을 신축하는 등 법망을 교묘히 이용, 정부 대책안의 허점을 보여주고 있다.
◇ 씨랜드가 보여준 부실
‘화성씨랜드’참사는 사회적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인재라는 것이 당시 수사를 맡은 수원지검의 최종 결론이었다.
특히 당시 범정부차원에서 진행된 행정규제완화방침에 따라 소방법 및 건축법, 청소년기본법 등 관련 법규가 느슨해진 틈을 타 진행된 위법행위가 가장 큰 문제점으로 부각됐다.
우선 씨랜드는 59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음에도 소화기는 불과 16개밖에 비치되어 있지 않았고 소방전 및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은 전무했었다.
또 실내장식물(커텐, 카페트 등)에 대한 방염시설 규제가 없어 유독가스로 인한 대형인명피해로 이어졌다.
씨랜드는 화재 발생 후 1층 콘크리트 구조물을 제외한 2~3층 건물이 전소하고 골조마저 휘는 등 내화구조설계에 취약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건축물대장에는 1~3층 모두 경량 철골구조로 허가됐으나 실제 2~3층은 열전도가 강한 가건물(스티로폼 및 목재)로 건축, 피해를 가중시켰다.
아울러 화재현장으로 이어지는 진입로의 폭이 좁아 소방차의 접근이 어려웠다는 점도 지적됐다.
◇허울뿐인 소방법 및 건축법
정부는 씨랜드 사건 후 건축법을 개정, 수련원의 내장을 방화상 지장이 없는 불연재료 또는 난연재료로 마감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 수련원 진입로 관련법도 개정해 도시지역과 같이 2천㎡이상의 건축물을 지을 경우 4m이상으로 확보할 것을 법제화 했다.
또 건축물에 대한 불법 용도변경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다고 판단, 건축허가 전에 반드시 해당 공무원의 현장조사를 의무화 했다.
하지만 이 같은 건축법 강화에도 불구하고 경기도내 일부 수련원을 중심으로 건축물에 대한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기도가 지난해 9월 실시한 청소년수련원 교체 점검 결과 도내 전체 129개 수련시설의 약 20%인 29개 시설이 건축 및 안전관리가 엉망인 것으로 드러났다.
화성 소재 H수련원의 경우 콘테이너박스를 불법가설 후 매점으로 사용하다 적발됐으며 광주의 G수련원은 숙박정원 및 대피경로 등을 미개시했고 안성의 O수련원은 비상유도등의 일부가 켜지지 않았으며 파주의 G수련원은 1층 식당 화재발신기가 작동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소방법도 사정이 비슷하다. 정부는 당시 소화기만 설치하도록 규정한 청소년 수련시설 소방법시행령을 대폭 강화, 옥내외 소화전은 물론 스프링클러, 동력소방펌프 설비를 갖추도록 조치했다.
또 특수장소에서 제외되 방염시설 적용대상이 아니었던 수련원에 대해 커텐, 카페트, 벽지 등 실내장식물 설치시 반드시 방염성능이 있는 것으로 시공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취재결과 몇몇 수련원은 규제인 2천㎡이상 100인 이상 숙박시설에서 벗어나기 위해 1천800㎡로 하는 등 소방법을 교묘히 피해 나갔다.
용인 H수련원은 숙박인원이 어린이 기준 120명 규모의 시설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성인 100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화재감지기를 설치하지 않았다.
◇겉도는 청소년기본법
씨랜드 참사 후 청소년기본법이 대폭 수정됐다. 당시 법적으로 배치해야 할 청소년지도사가 현장에 없었고, 사고 발생 이후 보상 등의 대책이 전혀 없는 점을 개선한 것.
청소년수련시설의 의무보험가입제도가 개선됐으며 운영기준도 강화됐다. 또 청소년지도사에 대한 수련원 의무배치를 통해 안전사고에 대비한다는 것이 당시 정부의 개선방안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대책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기본법의 실효성은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고 있다.
특히 청소년지도사 의무배치의 경우 수련시설 인·허가를 담당하는 일선 공무원조차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미흡한 제도와 개선된 규정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요구되고 있다.
청소년 시설을 담당하는 한 공무원은 “시설 인·허가시 청소년지도사 배치 등을 확인하지만 수련원 운영중 지속적으로 확인하기 어렵고 원거리에서 벌어지는 임시적인 용도변경 등도 감독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배인성·권혜령기자 khr@kgib.co.kr
▲▲보험료·보상한도 조정자율적 가입 유도해야
씨랜드 참사 후 사망자 23명에게 지급된 보상금은 특별위로금 18억4천만원(8천만원 일괄 지급)을 포함해 총 55억3천900여만원이다.
당시 화성군은 재원마련을 위해 ‘씨랜드화재사고사상자보상금지급조례’를 신설하고 지방채 발행을 통해 22억원을 충당했다. 정부는 이 일을 계기로 청소년수련시설 보험가입제도를 개선, 수용규모와 수용시설, 연면적 등을 감안해 의무적으로 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강제규정을 마련했다.
그러나 보험업계를 중심으로 수련시설이 의무보험 가입에 전적으로 의존할 게 아니라 자율적인 보험가입을 유도하는 방안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보험료 수준 및 보상한도, 정부의 역할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없이 관계부처의 필요에 따라 책임회피식으로 의무보험제를 도입했다는 주장이다.
실제 지난 1월 개정된 청소년활동진흥법상 보험가입 기준을 살펴보면 사망의 경우 8천만원, 부상은 등급에 따라 500만원~8천만원까지 지급토록 규정하고 있다.
9년전 씨랜드 참사시 지급됐던 1인당 약 2억2천만원(유아기준)과 비교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나마 시설 건축연면적이 1천㎡이하인 ‘청소년문화의집’ 등은 의무보험 가입 대상에서 제외돼 관련법 개정이 시급한 상황이다.
보험금의 현실적 지급을 위한 가입금액 확대는 물론 이에 앞서 책임회피용 의무보험이 아닌 수련원 스스로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자율보험가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선진국의 경우 어린이 안전사고와 관련된 의무보험 제도를 찾아볼 수 없다”며 “수련원의 자율적 가입을 유도하고 안전의식을 높이는 등 계몽활동이 우선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수련원이 의무보험제도를 악용할 경우 대형사고 발생시 현실적인 보상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권혜령기자 khr@kgib.co.kr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