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시인이었던 국어선생님께서 들려준 이야기이다.
고등학교 시절, 그를 포함한 몇 명이 유독 한 친구의 집을 열심히 드나들었다. 그 친구의 여동생이 유난히 예뻤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배짱이 두둑했던 한 친구가 “그녀는 나의 것”이라고 선언해버렸고, 이에 다른 한 친구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는 아쉽게도 “그녀는 누구의 것도 아닌 그녀 자신의 것”이라고 외칠 기회를 놓치고 배짱 좋은 친구가 예쁜 여학생을 자신의 여인으로 기정사실화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최근에 나오는 기정사실화의 한 사례가 “민생과 관련된 공기업, 혹은 망효과(network effect)가 있는 공기업들은 민영화하지 않는 게 좋다”는 주장이다.
먼저 이렇게 질문을 해 보자. “민생에 관련된 기업들은 공기업으로 경영되어야 할까?” 또한 우편배달 서비스를 민간에 개방한 경험이 있으므로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다. “우체국에서만 할 때에 비해 택배회사들을 포함, 민간 기업들이 들어오면서 훨씬 더 편리해지지 않았나?” 이렇게 반문해 보면 민생을 앞세운 공기업 민영화 연기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민영화를 반대하는 또 다른 전문적인 논리로는 망효과 혹은 망외부성(network externality)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휴대)전화의 유용성은 높아지는데 이처럼 망(網)이 커질수록 유용성이 높아지는 효과를 망효과라고 부른다. 망효과와 관련된 걱정은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시장에서 나타나는 사용자들의 숫자가 망효과를 통한 이득을 감안하지 못하고 별로 크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를 망외부성이라고 부른다.
또 다른 걱정은 망효과가 있을 때의 표준의 선택 문제다. 특정 기술이 기술적으로 열등함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먼저 보급되면 한계생산비가 일정하다는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는 망효과 덕택에 그 시장 전체를 차지하게 된다. 망효과로 인해 생산규모가 늘어날수록 수익이 늘어날 수 있어 망효과가 없을 때 단위당 생산비가 하락할 때처럼 그 기술을 가진 기업이 자연독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충분히 우월한 기술은 선점효과를 극복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우월한 기술의 경우에는 기존기술의 망효과로 인한 선점효과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신기술(표준)에 대해 사용자들이 느낄 만족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가정이 성립되지 않는 한 정책적으로 개입하여 더 나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는 종류의 문제이다.
망효과와 공기업민영화를 연결해 생각해 보자. 국영기업일 경우 경영실패의 몫은 경영자가 아닌 소비자와 납세자의 부담이다.(맨큐의 경제학, 4판, 380~383면)
우월한 기술의 출현과 채택의 가능성도 전화국일 때가 아니라 KT, SK, LG 등의 전화사업자들이 등장했을 때 더 기대할 수 있다.
‘민생을 위해, 망효과를 감안하여’라는 이유로 민영화를 연기하려는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 이런 식의 주장이 정치권에서 나오는 것은 민영화를 추진할 때 시장의 경쟁압력으로부터 벗어나 있고 싶은 기득권층의 저항에 맞서야 하는 수고로움을 비켜가려는 신호는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수고 없이 어떻게 개혁을 이루나? “그녀는 그녀 자신의 것일 뿐”이라고 외칠 용기도 없이 어떻게 예쁜 그녀와 사귈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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