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의 진정한 의미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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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때만 해도 대다수 사람들은 민주화 운동의 결실로 성립한 ‘87년 체제’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한다면 한반도 대운하건설을 포기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회견은 마치 ‘87년 체제’의 성립을 가져왔던 6·29 선언을 연상시켰다. 촛불집회가 이명박 정권을 무너트리는 촛불혁명으로는 발전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이 정부가 출범하면서 기치로 내걸었던 실용주의 정책의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진 것처럼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2008년 체제’의 성립에 대한 기대도 생겨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가 일으킨 나비효과가 이렇게 클 줄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FTA의 조속한 체결을 위해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이라는 선물을 부시 대통령에게 주었다. 아마 그는 자동차라는 공산품을 팔고 쇠고기라는 농산물을 사는 것은 남는 장사라는 생각으로 그런 거래를 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자동차라는 공산품이 쇠고기라는 농산물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믿었음에 틀림없다.

가치를 매기는 방식은 수요와 공급에 의거한 시장가격으로 산정되는 교환가치와 사물 그 자체가 가지는 유용성으로 환산하는 사용가치가 있다. 예컨대 물과 공기의 교환가치는 아주 낮지만 사용가치는 매우 높다. 자동차와 쇠고기의 경우는 교환가치와 사용가치에 대한 평가는 서로 엇갈린다. 환경정책의 세계적 권위자 레스터 브라운은 “지구 환경이 이 지경이 된 원인은 시장 가격이 ‘진실’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각종 석유 제품이나 양고기의 시장가격에는 지구온난화나 사막화 등 간접적인 비용이 반영돼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자원고갈과 과잉개발은 계속되어 환경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는 교환가치에 입각한 사회다. 하지만 광우병에 걸린 사람에게 물질적인 부가 무슨 소용 있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로 성공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성공 신화가 발목을 잡고 있다. 모든 성공의 빛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성공의 빛에 가려진 어두운 그림자를 보지 못하고 하늘 높이 오르기만 하면 그리스 신화의 아카루스처럼 날개 없는 추락을 하고 만다.

이제 우리의 염려는 이명박 대통령의 추락은 그만의 실패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손실이고 우리 국민 대다수의 불행이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광우병 사태로 촉발된 촛불시위가 보수와 진보의 이념투쟁으로 변질되어 계속해서 사회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사태로 나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촛불집회의 위대한 힘은 정치운동이 아닌 문화운동으로 시작했다는 점이다. 광화문과 청계광장에서 외쳐지는 대다수 구호가 어느 한 방향으로만 치우치는 것은 촛불의 상징성을 위배하는 것이다. 촛불은 작은 불이다. 작은 것이 큰 것보다 위대할 수 있는 힘은 하나가 아닌 여럿, 곧 다양성에서 비롯한다.

‘이명박 OUT’라는 팻말을 밝히는 여러 개의 촛불로 이뤄진 횃불에 의해 “소를 생명으로 존중할 때 광우병은 사라진다”의 작은 촛불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 광우병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는 검역주권과 국민건강이 아니라 인간이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임으로써 생태계 질서를 파괴한다는 점이다. 촛불집회를 통해 양적으로 국민소득을 높이는 성장지상주의가 아니라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생태정치로 문명사적인 방향전환을 하는 등불이 켜지길 바란다. 인간만이 아니라 소에게도 지구상에서 살 권리가 있다는 점을 인류는 광우병으로 멸종하기 전에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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