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끝이 있기 마련이다. 두 달 이상 지속됐던 촛불집회가 이제는 마무리되는 단계에 도달한 것 같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이 만들어낸 촛불집회의 태풍이 우리 사회를 휩쓸고 간 이후, 각자에게 주어진 문제는 ‘죽느냐 사느냐가’가 아니라 ‘값 싸지만 미심쩍은 미국산 쇠고기를 사먹을 것인가 사먹지 않을 것인가’이다.
헤겔이 “미네르바 부엉이는 밤이 돼서야 나래를 편다”고 말했던 것처럼, 이제 우리는 냉정하게 사태를 정리해야 한다.
촛불시위는 진보와 보수, 이명박 정부 지지 세력과 반미·반정부 세력 간의 권력투쟁이었는가, 아니면 국민경제와 국민건강 사이의 가치투쟁이었는가. 전자는 과거로부터의 싸움이지만, 후자는 미래를 위한 싸움이다.
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는 이 둘은 서로 겹쳐 있다. 과거 없는 현재는 공허하고, 미래 없는 현재는 맹목적이다. 미래가치의 문제의식으로 시작한 촛불집회가 과거이념을 위한 촛불시위로 변질됐을 때 촛불은 약해져 커지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를 분열시켰던 촛불집회를 통해 우리가 어렵게 이루어낸 하나의 사회적 합의는 ‘Health Before Wealth’(부 이전에 건강)라는 그야말로 ‘웰빙’이 우리가 함께 추구해야 할 미래가치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얻은 교훈은 소통 없는 정치란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정치권의 화두는 국민과의 소통을 어떻게 하느냐다.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신문과 방송은 연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를 주제로 한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른바 ‘끝장 토론’을 벌이면 벌일수록 소통이 되기는커녕 상호 불신만 증폭시켰다. 토론을 통해 수많은 정보가 흘러나왔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소통장애는 해소되기보다는 치유불가능하게 악화될 뿐이었다. 정보의 과잉은 소통을 돕기보다는 더욱더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왜 이런 모순적 현상이 발생했는가.
문제는 미디어다.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사실 가운데 하나는 어느 미디어를 통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정보를 얻느냐에 따라 메시지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신문 권력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이 잡고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진보적 성향의 네티즌들이 담론의 주도권을 갖고 있다. 우리사회 권력의 견제는 삼권분립이 아니라 매체투쟁으로 이뤄진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앞으로 매체투쟁이 세대갈등의 양상을 띠고 전개됨으로써 인터넷상의 가상현실 권력과 현실정치에서의 실제권력 사이의 싸움은 본격화 될 것이다.
매체투쟁이 집단지성을 확대시킬 것인가, 아니면 집단광기를 유발시킬 것인가? 이 문제가 촛불집회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둘러싼 논쟁의 과정 속에서 드러났듯이, 신문이 지는 해라면 인터넷은 뜨는 해다.
하지만 과거 전통을 무시한 미래 새역사 창조란 불가능하다. 지식 정보 사회에서 신문이 지식을 담당한다면, 인터넷은 정보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역할분담이 일어나야 한다. 정보가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이라면, 지식은 전문가에 의해 가공된 제품에 해당한다.
신문은 정보의 불순물을 걸러서 지식을 생산하는 매체가 돼야 한다. 신문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대중이 집단광기의 노예가 아니라 집단지성의 창조자가 될 수 있도록 지식의 매개자가 돼야 한다. 이 점을 염두에 둔 신문업계의 전향적인 변화를 기대한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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