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성에 관하여

하석용 인천 시민회의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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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온 국토를 가로질러 산지사방으로 이어진 도로의 편리함에 감사한다. 이런 시대에 태어나서 삼천리 길을 단 며칠 만에 돌아볼 수 있는 행복에 감격스럽다. 나 혼자 힘으로 그 구경을 하러 다니자고 했으면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 평생의 역정이 되었을 것인가. 역시 인간끼리 모여 힘을 합하는 것이 얼마나 삶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하는 일인가 말이다. 인간세상 만세!

그러나 우리나라 고속도로에서 이런 상쾌함은 좀처럼 오래 가질 않는다. 잘 뚫리던 도로가 갑자기 막히는가 싶더니 급기야 끝 간 데를 모르게 늘어선 차량행렬이 도무지 움직일 줄을 모른다. 뜨겁게 쏟아지는 삼복의 햇볕에 프라이팬처럼 달아오른 자동차 속은 에어컨의 냉기로 감당이 되지를 않는다. 자동차의 엔진 냉각기능에도 탈이 나지 않을까 싶고, 얼마 남지 않은 연료 게이지의 눈금에도 빠지직 속이 타들어 가더니 누구에게랄 것 없이 분통이 터진다. 이거 아니잖아! 고속도로 좋을 게 없네!

스위스에서 있었던 얘기다. 차량 통행 속도가 늦어져서 터널과 도로 폭을 늘려야 하겠다는 집행부측과 도로를 아무리 늘려봤자 그러한 편익의 제공은 또 다시 차량 수요의 증가라는 악순환을 계속시킬 것이므로 대중운송 수단 이용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도로 증설을 자제해야 한다는 일부 의원들의 주장이 대립했던 적이 있다. 독일의 한 작은 도시에서는 도심에 공영 주차공간을 늘려달라는 주민들의 압박에 불구하고 시장이 거꾸로 도심 주차공간을 없애버렸다. 잠깐 난리가 나기야 했었지만 그 도시는 도심에서는 승용차를 볼 수 없는 쾌적한 모습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이다. 과연 어떤 것이 공익적으로 영원한 정답이었을까.

공익이라는 것은 판단하기 어려운 그러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끝없는 선택의 문제이다. 공익의 범주 속에는 다양한 인생이라고 하는 거의 무한대의 경우의 수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당연히 어떤 개인이나 일부 집단의 밀어붙이기가 허용되지 않는 까닭이다. 그래서 공익적 결정을 위해서는 ‘룰’이 중요해진다.

요즘 우리나라 유수의 방송매체들이 공익 논쟁에 휩싸여 있다. 서로가 제 고집만이 공익적이라고 하니 보는 사람으로서 민망한 일이다. 이 사회에 ‘룰’의 권위가 깨어졌다는 이야기이어서 서글퍼진다. 올림픽 핸드볼 심판들도 아니고 제발들 ‘룰’ 좀 지켜라.

하석용 인천 시민회의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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