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건국 60주년인가, 아니면 정부수립 60주년인가의 논쟁이 8월 15일을 정점으로 극에 달했다가 이제는 하강국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이 난 것이 아니라 일단 소강상태에 든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사회에서 좌파와 우파 사이의 이념논쟁과 정치투쟁은 소재만 바뀔 뿐 계속 이어진다. 촛불집회의 초점은 원칙적으로는 국민건강 문제임에도 정치투쟁의 양상으로 전개됐다. 광복절이냐 건국절이냐도 본질적으로는 역사 논쟁인데, 정치 헤게모니 싸움으로 변질됐다.
우리사회는 모든 문제를 정치화하는 경향이 있다. 역설적인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정치는 과잉돼 있는데, 제도로서 정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거리정치는 만연돼 있는 반면 실제로 정치적 활동이 이뤄져야 할 국회는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의견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때문에 정치가 있으며, 현재까지 인류가 그런 충돌을 합리적이며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제도로 발명한 것이 민주주의다. 하지만 쟁점이 되는 모든 사항을 민주주의로 해결할 수 있으며, 또 해결해야 하는가.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 위험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올해가 건국 60년인지 대한민국 정부수립 60년인지를 보통사람들이 다수결로 찬성하는 쪽으로 정할 것인가, 아니면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를 것인가. 민주주의가 만병통치약이라면,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한 아테네 시민들이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여럿이 지혜와 정보를 모으는 집단지성과 익명적 대중이 마녀사냥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집단광기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필자는 8월 15일은 광복절이면서 동시에 건국절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둘은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부정하는 모순관계가 아님에도 그렇게 보기 때문에 서로를 적대시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대한민국 국가의 위상이다. 건국절임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대한민국은 불완전한 분단국가라는 생각이 있다. 이에 비해 건국절을 주장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을 완전한 국민국가로 보기 때문에 해방은 건국을 위한 전단계로서의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전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 보기에 후자의 주장은 북한을 같은 민족으로 포용하기 보다는 배제하기 때문에 반공주의 우파 이데올로기에 매몰돼 있다. 이에 반해 후자의 사람들은 전자의 좌파들은 대한민국 국민이면서 대한민국 국가 정통성을 부정하는 자기모순을 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 둘 가운데에서 나는 어느 입장을 지지할 것인가. 이 같은 문제제기는 결국 대한민국 국가의 정체성과 미래의 방향 설정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조지 오웰은 ‘1984년’에서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고 썼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보수우파들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꿔서 정치적 헤게모니를 잡으려는 기도를 하고 있다. 이것을 아는 진보좌파들이 저항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역사투쟁을 벌일 때 정말로 중요한 것은 과거 해석이 아니라 미래 아젠다다. 역사로부터 미래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이정표를 얻기 위해서는 역사를 정치의 시녀가 아니라 정치의 거울로 삼는다는 자세로 역사 논쟁을 벌여야 한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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