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의 기능은 자원봉사다. 운영에 드는 돈은 설립자가 부담한다. 아니면 지지하는 시민들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대개는 후자다.
시민단체가 발달된 사회는 영국이다. 월급을 타면 평소 자신이 선택해 놓은 시민단체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는 것이 월급쟁이 생활의 일상이다. 영국 사회는 이토록 시민단체의 후원이 보편화됐다. 우리 돈으로 만원, 이만원 정도 후원하는 것이지만, 시민단체마다 워낙 많은 후원자를 갖다보니 운영이 되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시민단체는 시민이 없다. 전국적으로는 약 5천개, 도내엔 2천200개 가량의 시민단체가 있다. 그러나 시민의 후원금을 받는 시민단체가 있기나 하고, 있으면 몇이나 되는지는 의문이다. 우리 사회의 시민단체는 대부분이 독불장군이다. 대표는 그렇다 쳐도 사무처장이니, 무슨 국장이니 하는 것이 나홀로 처장이고 과장 없는 국장들이다. 직함만 인플레인 게 아니다.
그 많은 시민단체 간판을 보면 권력 지향적이다. 과대포장도 눈에 띈다. 청소년이나 노인, 빈민 문제 등을 표방하는 시민단체는 별로 볼 수가 없다. 정부 시책이나 자치단체 사무를 시비 삼기 좋아할만한 권력형 시민단체 투성이다. 한데, 독불장군의 시민단체에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있을리 없다. 또 시민이 없는 시민단체들이다 보니 손을 벌린다. 정부나 자치단체의 보조금을 탐한다.
보조금을 타는 것 까지는 또 그런다 쳐도 주민이 낸 지방세, 국민이 낸 국세가 눈 먼 돈이 되기 십상이다. 이미 감사원 감사에서 수천억원이 이렇게 실종된 사례가 밝혀진 바가 있다. 아마 적발 안 된 돈이 더 많을 것이다.
시민단체를 만들어 후원금이 없으면 자기 돈으로 꾸려가야 할 설립자가, 단독이든 여러 사람이든 자기 돈을 쓰는 예는 거의 없다. 그럼, 보조금이라도 제대로 집행해야 할 터인데도 그렇지 못한 데는 연유가 있다. 시민단체를 생계나 생계 보조수단으로 삼기 때문이다.
어느 환경단체의 환경운동가가 기자 회견을 자청한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는 보조금을 가로챈 혐의로 검찰의 내사를 받고 있던 참이다. 자신은 억울하다는 말 끝에 “환경운동가도 문화적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며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적셨다. 검찰이 내사한 혐의 사실의 실체적 진실이 뭣인지 여기서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시민운동이 시민운동가의 문화적 생활의 방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모든 시민운동은 시민운동가의 개인적 이해관계와 무관해야 진정한 사회적 공익의 시민운동인 것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가운데 8명이 말썽 많은 종합부동산세 납세 대상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 때문에 종부세 헌법소원을 법정 시한이 넘기도록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일 것 같으면 낭패인 게 앞으로 만약 어떤 판결이 나오면 개인의 이해 관계와 결부시켜서 보는 눈이 있을 수 있는 점이다. 하지만 이는 그래도 재판의 객관적 격식이 있다.
임의단체의 시민운동이 운동가의 문화적 수준에 이른 생계보장을 권리로 본다면 이건 완전히 왜곡된 직업이다. 직업도 상직업이다. 소득으로 챙기는 검은 돈은 세금도 안 붙는다. 선민 의식이다. 이런 시민운동이 참여민주주의 방식으로 패러다임의 중심부를 형성한다고 말할 순 없다. 정부나 자치단체의 실패에 해법을 제시하는 시민운동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시민운동은 비권력화가 본질이다. 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시민운동을 해서는 안 되고, 시민운동을 하다가 정부의 높은 감투를 얻어 써도 안 되고, 시민운동을 권력의 접근 수단으로 삼아도 안 된다. 그래서는 시민운동의 순수성을 잃기 때문이다. 생업이 없는 건달들의 시민단체가 대개 이런 부류들이다.
바꿔 말하면 본연의 생업이 없고, 감투 욕심이 있고, 권력과 흥정하길 좋아하는 사이비 시민운동가는 시민단체 세계에서 추방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다. 시민단체는 민주주의 토양의 밑거름과 같다. 밑거름은 작물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 그런데 작물의 성장을 갉아먹는 병해충 같은 시민단체가 더 설쳐댄다.
첫 머리에서 시민단체의 기능은 자원봉사라고 했다. 자원봉사는 자신의 이해를 돌보지 않는 사회공익의 기여다. 시민단체는 넘쳐난다. 넘쳐나긴 해도 그같은 시민단체가 드물다. 시민단체, 시민운동은 필요하다. 그런데 시민단체, 시민운동의 폐악이 심하다. 시민이 있는 시민단체, 봉사형의 시민운동과 시민이 없는 시민단체, 생계형의 매명운동과 구분할 줄 아는 사회의식이 깨어나야 할 때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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