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 나눠먹기와 빼먹기

이원희 한경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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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예산 심의를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으나, 모두가 시계(視界) 제로의 상태에서 진행하고 있다. 예컨대 환율을 1달러 대 1천원으로 예상하고 편성했으나 비현실적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1천4백원으로 한다고 해도 불안하다. 이런 단가의 불확실성 이외에도 내년도 경제 성장율의 불확실성과 세법 개정에 따른 지방교부세와 세입추계의 혼돈도 매우 큰 변수이다. 이럴 때 재정개혁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경제성장기에 세입이 늘어날 때 팽창 예산을 추구했던 정부가 이제는 경제가 어려우니 재정 지출을 늘려서 경기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어찌되었건 정부는 재정 팽창을 하려는 속성을 보인다. 우려되는 것은 수입이 줄어드는데 지출을 늘리면 재정적자가 발생하고 그것은 다시 주민의 부담으로 귀착된다는 점이다. 이제 성장기의 팽창 예산을 극복하고 미래를 생각하면서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산은 개개인의 푼돈을 모아서 목돈을 만든 다음 개개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중요하고 큰 사업을 수행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개인들이 자신의 권리를 유보하고 정부에 기여한 이 자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투명하고 활용하고, 효율적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무원이 도덕성과 전문성이 요구되고, 의회의 통제능력 그리고 시민의 감시와 관심이 필요하다. 그런데 목돈을 지출하는 과정에서 부스러기 돈이 발생한다. 더군다나 예산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주체들이 골라먹기, 나눠먹기, 빼먹기에 몰두할 우려도 제기된다.

‘관급공사하면 돈 번다’는 말이 있다. 어음으로 지급하지 않고 현금으로 지급된다는 장점도 있지만, 부풀리기 식 단가와 엉성한 설계 변경의 요건이 수입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이에 관급공사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이 자신의 이권을 골라먹는 정치 과정이 형성된다. 그리고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나눠먹기가 이루어진다. 몇몇 사람들이 책상에 둘러 앉아 논의하면서 목소리 큰 사람의 주장에 솔깃해져 특정 이익과 목소리에 경도된 결정이 성급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지역의 다양한 단체나 활동에 대해 3백만원, 5백만원, 1천만원 등 소규모로 분산된 자금이 지원된다. 선거를 거쳐야 하는 시장이나 의원의 생색내기용으로 지출되기도 한다. 자생적인 단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부 돈을 빼내어서 활동을 하는 것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재정 융자 사업의 경우에 은행이 하는 융자 사업에 비해 부실채권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은행은 대출을 했다가 받지 못하면 은행이 망하고 결국 직원이 실업자가 된다. 그런데 정부 돈은 회수가 되지 않아도 아무도 망하지 않는다. 정부 돈을 빼먹기 위한 활동이 강화되고 정치학 교과서에서는 이를 돼지 먹이통식 정치과정(pork barrel politics)이라고 한다.

선량한 시민의 조세부담으로 조성된 예산의 공공성을 확립하기 위한 잔 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예컨대 사회단체 보조금 지원 사업의 경우 공익적 성격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심의하기 위한 사회단체보조금 심의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시민은 한편으로 유권자인데 이들의 요구를 시장, 군수가 피할 수가 없다면 위원회의 결정이라는 명분으로 과감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 무엇보다 보조금 지급에 대한 성과평가가 필요하고, 공개토론회를 개최하는 것도 방법이다. 연례적으로 반복되어 지원될 때 시민사회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 최근 환경단체의 보조금 집행에서 나타난 문제가 단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자치단체에서 사회단체나 민간단체에 대한 보조금의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은 우리의 민주의식을 개혁하는 과정도 된다. 이를 통해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제고하는 계기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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