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를 지칭하는 영어의 ‘professor’라는 말은 라틴어 어원으로 ‘pro(before)’와 ‘fateri(to avow)’의 합성어에서 유래한다. 즉 교수란 사람들 앞에서 공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축적된 지식이나 진실을 많은 사람 앞에서 ‘고백’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교수라고 보았던 것 같다. 그동안 나는 많은 학생들에게 수없이 많은 고백을 해온 셈이다. 훌륭한 선생은 학생들의 삶과 영혼을 뒤흔들어 놓을 훌륭한 고백들을 하겠지만, 나는 단지 나를 찾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 주는 선생으로 기억되도록 노력해 왔다.
지난주에 15년 전에 졸업한 한 여학생이 내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남편과 함께 찾아뵙고 싶다는 간단한 글이었는데 간혹 주례를 부탁하는 제자들이 부부동반으로 오기는 해도 도무지 이유를 짐작 할 수 없었다. 시간이 꽤 지났기는 했지만 이름만으로도 그 학생을 떠올리기는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 여학생은 사물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어떻게 책을 읽고 공부할까 늘 안쓰럽게 생각했었다. 성적도 결코 보통 학생들과 견주어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노력의 결과였을 것이다. 더욱이 졸업 즈음에 어떤 훌륭한 청년과 사랑에 빠졌는데 양쪽 집안에서 심하게 반대를 했다는 것과 그 모든 반대를 극복하고 결혼해서 한 아이까지 둔 엄마가 됐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15년 만에 본 그 여학생은 여전했다. 비록 서로 눈을 맞추고 이야기 할 수는 없어도, 밝게 웃는 것이나 씩씩한 목소리가 얼마나 열심히 삶을 살아 왔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 제자는 대학원에 진학해서 이번 학기가 마지막으로 내년에 석사학위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혼자서는 책을 읽을 수도 차를 탈 수도 없어서 남편과 아이와 함께 학교에 다녔다고 했다. 가족이 함께 수업에 들어가고 아이가 보채면 데리고 나오기도 하고 참으로 어려운 일을 이루어 낸 훌륭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함께 온 듬직한 남편이 내 제자의 실제 눈이 되어준 것이다. 이제 졸업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나누어 주고, ‘고백’할 기회를 갖고자 나 같은 선생들을 적극적으로 함께 찾아다니자고 조언을 하는 미래를 보는 예지의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15년이라는 시간은 참 많은 고통을 그들에게 주었겠지만 그 긴 시간을 관통하며 지켜낸 그들의 힘은 자기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나에게 보여 주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 제자에게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었다. 거꾸로 그 제자는 15년 만에 내 앞에 서서 진정한 선생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되돌이켜 생각할 수 있도록 나의 선생이 돼어 주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나를 그렇게 믿거나, 사람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지 자신이 없다. 아주 자주 내가 가진 것보다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과 남이 가진 것 때문에 상처 받고 우울해 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무엇하나 뚜렷하게 이루거나 잘 된 일 도 없이 12월이 되고 또 한해가 가버린다. 제자에게 배운 사랑의 힘으로 2009년은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는 해가 되기를 소망하며, 모든 사람들이 힘들어 할 만큼 2009년의 경제 전망이 결코 밝지는 않지만 극한의 어려움에서도 사랑의 힘으로 극복하고, 그 경험을 주변 사람들에게 되 돌려주려는 내 제자의 마음과 같다면 그까짓 경제위기는 쉽게 넘길 수 있지 않을까.
/공 유 식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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