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생구(生口)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공(牛公)이란 경칭도 쓴다. 우리말에서 식구(食口)는 가족을 뜻하고 생구는 한집에 사는 하인을 말한다. 소를 생구라고 함은 사람대접을 할 만큼 존중하였다는 뜻이다. 소를 소중히 여기는 까닭은 소가 힘든 일을 도와주는 구실을 하며 소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값이 비싸서 재산으로서도 큰 구실을 하였다.
소를 사들이거나 외양간을 지을 경우엔 반드시 음양오행에 기초를 둔 길일을 받아 시행하였다. 소를 사거나 송아지를 새로 들여오는 날을 납우일(納牛日)이라고 하였다. 축사 관리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봄이 오면 외양간을 깨끗이 쳐내고 보름마다 청소를 하는 것이 관례였다. 농사철 논밭갈이가 시작되면 낮에는 풀을 뜯기고 밤중에 죽을 많이 먹여서 새벽에 일을 하도록 했다.
삼복 더위엔 야경(夜耕))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외양간은 사랑채의 부엌과 가까이 짓고 통기가 잘 되도록 배려했다. 외양간 위층은 가마니·짚 등의 창고로 삼아 보온의 효과를 겸했다. 먹이는 아침 저녁으로 삶아서 주는 것이 관습이었다. 이슬이 묻은 풀은 먹이지 아니하고 일철엔 특히 콩을 많이 먹였다. 날씨가 추워지면 외양간의 보온뿐만 아니라 덕석(牛衣)를 만들어 등을 덮어 주었다. 덕석을 입힐 땐 소 배 피부에 상처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명끈으로 부드럽게 매주었다.
정월 들어 첫번째 맞는 축일(丑日)은 ‘소날’이다. 이 날은 소에게 일을 일절 시키지 않음은 물론 쇠죽에 콩을 많이 넣어 배불리 먹였다. 도마질이나 방아질을 하지 않고 쇠붙이 연장을 다루지도 않았다. 도마질을 하지 않는 것은 쇠고기 요리를 할 때에는 으레 도마에 놓고 썰어야 하는데 소의 명절날이므로 이와 같은 잔인한 짓을 삼간다는 뜻이다. 방아는 연자방아를 의미한다. 연자방아는 소가 멍에에 매고 돌리는 것이므로 자연히 소에 일을 시키는 결과가 된다. 쇠붙이 연장을 다루지 않는 것도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다는 의미가 내포됐다.
소를 인격화한 일화가 많다. 황희(黃喜·1363~1452)가 길을 가다가 두 마리의 소가 밭을 가는 것을 보고 농부에게 물었다. “어느 소가 밭을 더 잘 갑니까?”. 농부가 황희 옆으로 다가와서 귀속말로 “이쪽 소가 더 잘 갑니다”라고 하였다. 황희가 “어찌하여 그것을 귓속말로 대답합니까?” 다시 물었다. 농부가 “비록 축생일지라도 그 마음은 사람과 다를 것이 없으니 한쪽이 이것을 질투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 소의 꼴 먹는 것과 불자(佛子)가 설법을 듣는 것을 비교한 일화도 전한다.
소의 우직하고 인내력 있고 충직한 성품을 나타내는 전설도 많다. 경상북도 상주군 낙동면에는 권씨라는 주인 농부의 생명을 구하고자 호랑이와 싸움 끝에 죽은 소의 무덤과 관련된 전설이 있고, 개성엔 눈먼 고아에게 꼬리를 잡혀 이끌고 다니면서 구걸을 시켜 살린 전설이 전해진다. 바로 우답동이란 마을이다.
나경(裸耕)의 습속도 전한다. 관동·관북지방엔 예로부터 나경의 습속이 있었다. 나경은 정월 보름날 숫총각으로 불리는 성기(性器) 큰 남자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가 되어 목우(木牛)나 토우(土牛)라 하는 의우(義牛)를 몰고 밭을 갈며 풍년을 비는 민속이었다. 땅은 풍요의 여신이요 쟁기는 남자의 성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다산력을 지닌 대지 위에 남자의 성기를 노출시켜 풍성한 수확을 빌었다.
2009년은 기축년(己丑年) 소띠 해다. 십이지신(十二支神)의 소의 방향은 동쪽, 시간은 새벽 1~3시, 달은 음력 12월을 지키는 방위와 시간의 신이다. 소는 발굽이 짝수여서 음(陰)에 속하는 데다 순하고 참을성 잇는 본성이 땅 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씨앗과 닮았기 때문에 나온 배치다.
오행으로 보면 더욱 희망적이다. 기축년의 ‘기’와 ‘축’은 모두 흙 토(土)에 속한다. 흙 위에 다시 흙을 덮어 토심이 매우 깊다. 풍성한 오곡의 소출이 기대된다. 오행의 토는 방위로는 가운데 중(中), 소리로는 으뜸음인 궁(宮), 맛으로는 음뜸 맛인 감(甘), 숫자로는 완전수인 5, 색깔로는 기본색인 누렁 황(黃)에 해당한다. ‘중심’ ‘으뜸’ ‘기본’의 속성이 가장 뚜렷한 것이 오상(五常)으로 믿을 신(信)에 속한다는 점이다. 인의예지를 고루 갖춰 조화롭게 통합함으로써 얻게 되는 ‘믿음’이야말로 으뜸 덕성이다.
소의 명칭은 수소·암소·송아지로 불리는데 황소는 ‘크고 힘센 수소’다. 황소의 ‘황’은 고유어 ‘한’에서 나왔다. “소가 말이 없어도 열두 가지 덕이 있다”고 하지만 황소의 미덕은 무한하다. 우직하고 성실하고 온순하고 끈질기다. 풍요의 상징이기도 하다. “소는 버릴 게 하품밖에 없다”고 하였다. 이틀이 지나면 기축년 황소 해다. 사람들 특히 2008년 내내 국민들을 분노케 한 위정자들이 새해엔 제발 소를 닮았으면 좋겠다. 실제로는 얕잡아보고 군림하면서 위정자들은 입만 열면 국민의 머슴이라고 떠벌린다. 그러나 소는 주인을 배반하지 않는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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