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벙커와 경제 살리기

조장호 경영학 박사·전 한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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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작년하고는 완전히 달라 보인다. 신년휴일이 끝나자마자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을 갖고 비상경제정부를 선언하더니, 즉각 청와대 지하벙커에 상황실(비상경제상황실)이 차려지고, 운영조직이 임명되고, 대통령이 주재하는 첫 번째 대책회의(비상경제대책회의)가 열렸다.

불과 한 주일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다. 이런 발 빠른 움직임에서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평가를 할 수가 있다.

하나는 정부의 결연한 의지와 속도감이다. 지난 1년 동안을 촛불집회로 시작되어 난장판 국회에 이르기까지 내내 발목 잡혀서 쌓여있는 일들을 처리하려면 시간이 급하다는 의미가 있고, 실용정부답게 ‘경제 살리기’라는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효율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차질 없이 추진하려면 기업처럼 여러 안건과 이견을 종합 조율하는 역할과 기능이 필요하다는 판단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경제위기가 매우 심각한 만큼 전시에 준하는 국민과 정부 스스로 경각심과 긴박감을 갖는 대응자세가 필요할 것이라는 판단도 ‘전쟁’과 ‘속도’를 재촉했을 만하다.

어찌 됐던 지금 밀어닥친 위기를 하루 빨리 극복하고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를 바라는 기업과 국민의 입장에선, 이렇게 ‘일하는 정부’로 달라지거나 달라지려는 모습이 사실이라면 그보다 바람직스러운 것은 없다. 이는 불안에 떨며 자꾸 움츠러들기만 하는 요즘의 경제심리를 되살리는 데도 작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보아 정부가 믿음과 공감을 얻어 내려면 앞으로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두 번째, 비상경제정부를 평가하는 또 다른 견해는 전시행정이다. 내용보다는 포장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는 비판적인 시각이다. 정부가 내놓는 시책들이나 회의 및 서류 등의 표제에 동원되는 비상, 긴급, 전략 등 작전 용어들이 그렇고, 굳이 지하벙커까지 들어가서 본부를 설치하는 일들이 모두 시각을 달리 하면 과잉동작으로 보여질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 야당이나 일부 시민단체들이 심지어 쇼를 한다고 혹평을 해도 이것은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걱정스러운 것은 국민 다수가 전자보다는 후자의 평가에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사실이라면 이는 예사로운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신뢰와 협력을 얻지 못하고는 비상경제정부의 경제 살리기가 제대로 성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나 정부 여당의 지지도가 낮아 비판여론이 훨씬 우세한 지금과 같은 여건에서 꼭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정면 돌파도 필요한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국민의 믿음과 성원이 받쳐 주어야 한다. 지금 우리의 민도는 과장된 제스처에 기대를 거는 과거의 그런 수준에서는 훨씬 벗어나 있다. 이제 우리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거나 회복하기 위한 원천은 진실이고 실적이다. 전시상황 등 다른 방법으로는 불신을 잠재울 수도 해소할 수도 없으며 오히려 더 키울 우려가 있다.

4대 강 살리기나 잠실 롯데의 1백20층짜리 공사가 일자리 창출에는 작지 않은 기여를 할 수 있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대운하와 부자 봐주기로 비판 받는 일도 그러려니와, 지금 연일 매스컴을 달구고 있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에 대한 평가도 모두 정부와 정책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미네르바가 세상의 관심을 끌고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 것 역시 무기력하고 주춤거리는 정부와 거대여당에 대한 반사효과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 역시 반성을 해야 한다. 비상경제정부의 시책들이 발등의 불끄기식 긴급대응 만이 아니라, IT 바이오 등 성장산업을 포함해서 위기를 기회로 삼는 보다 실속 있고 성과 있는 경제 살리기로 되었으면 한다.

/조장호 경영학 박사·전 한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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