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흑백 사진이 된 지 오래지만 내가 초등 학교에 입학했을 땐 앞가슴에 으레 이름표 밑에 손수건을 달고 다녀야했다. 어쩌다 손수건을 안 달고 가는 날엔 선생님한테 꾸지람을 들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앞가슴에 달았던 손수건이 주머니 속으로 옮겨지긴 했지만 손수건은 필수품이었다.
그때의 버릇 덕분에 외출할 때에는 반드시 손수건부터 챙긴다. 어쩌다가 손수건을 넣지 않고 대문을 나섰다가 되돌아가서 챙겨 넣고 나온 적도 여러 번 있다. 습관이란 그처럼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요즘엔 손수건을 넣고 다니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른들조차도 손수건을 넣고 다니지 않는다. 손수건이 필요할 땐 다들 휴지를 사용한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엔 어딜 가나 휴지가 널려 있으니 말이다. 화장실은 말할 것도 없고 세면장에도 수건 대신 휴지를 걸어놓고 있다. 심지어 음식점 식탁에도 식사하고 나서 입을 닦으라고 휴지를 접어 내놓았다.
나는 이게 영 마음에 안 든다. 손수건 한 장이면 되는 것을 왜 그 많은 휴지를 사용해야 하는가 말이다. 휴지 사용은 위생상으로도 좋지 않을뿐더러 환경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휴지가 제조되기 위해서는 멀쩡한 나무들이 희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해가 다르게 나빠지는 지구의 환경을 위해서라도 휴지 사용은 줄여야 마땅하다.
몇 해 전에 ‘손수건 할머니’란 동화를 발표했다. 항상 손수건을 넣고 다니면서 필요한 일이 생길 때마다 사용하는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할머니는 손을 씻고 나서도 손수건, 밥을 먹고 나서도 손수건, 탁자에 음식물이나 음료수가 떨어졌을 때도 손수건, 아이들이 놀다가 다쳐서 피가 났을 때도 손수건을 꺼낸다. 그런가 하면 할머니는 우리 나라 선수들이 다른 나라 선수들과 경기를 할 때에도 손수건을 응원용으로 사용한다. 또 친구들과 헤어질 때도 인사 대신 손수건을 흔든다. 참으로 별의별 일에 손수건을 다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손수건 할머니다. 이 동화는 할머니가 길바닥에 버려진 개똥을 손수건에 싸들고 가는 것을 본 친구들이 잔뜩 궁금한 얼굴을 해 가지고 뒤를 졸졸 따라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내 딴에는 그림책으로 만들면 어떨까 싶은 작품이다.
손수건은 비록 작은 물건이지만 그 사용 범위는 너르기 그지없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외출 시에는 필히 손수건을 챙겨 가지고 다녔다는 생각이 든다. 손수건 한 장으로 웬만한 일을 다 처리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생각할수록 삶의 지혜로움이 엿보인다고 할까.
나는 식당 같은 데서 휴지를 마구 뽑아서 사용하는 사람을 보면 다시 쳐다보인다. 그가 제아무리 비싼 옷을 입었고, 지위가 높다 하더라도 한참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아니 송강호가 나오는 영화 속의 괴물로만 보인다. 지구에 산소를 공급해주는 고마운 나무를 한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어먹는 공룡 시대의 괴물로 보이는 것이다.
손수건 한 장에는 예절과 검약의 정신이 담겨있다.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는 꽃씨 같은 마음이 들어있다. 나는 ‘손수건 넣고 다니기’가 사회 운동으로 번졌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마다 주머니에 손수건을 넣고 다니다가 콧물이 나올 땐 콧물도 닦고, 얼굴을 씻고 나서는 수건으로도 쓰고, 밥을 먹고 난 뒤엔 입 언저리도 문지르고, 야외에 나가 땅바닥에 앉을 땐 방석으로도 쓰고, 응원을 해야 할 땐 깃발처럼 흔들기도 하고…
“손수건 잊지 않으셨지요?”, 아침 인사로도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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