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는 다양한 분류 양식이 존재한다. 학자에 따라 분류하는 방법도 다르겠지만 나는 크게 물질적 양식과 정신적 양식으로 분류하고자 한다. 사람은 누구나 물질적 양식을 필요로 한다. 다만 그것에 의존하는 확률이 얼마냐에 따라 삶의 충만함이 달라진다. 둘은 좋고 나쁨을 따지지 못하는 상호 이질적이며 상호 보완적인 분류다.
그저 현대 사회에서는 정신적 중요성에 비해 물질적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은 자판기에서 마시는 커피의 몇배 아니 몇십배 비싸더라도 그것을 따지는 사람은 없다. 그저 당연하려니 한다. 왜 그럴까? 아주 좋은 원료를 사용하여서 그럴 수도 있다. 최상의 서비스를 곁들여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흔히들 이야기하는 자릿세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곳은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이다. 끼리끼리 누릴 수 있게 차별화 한 곳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를 탓하지 않는다. 그곳에 끼고 싶으면 나름대로의 자격을 갖추면 된다. 깨끗한 옷과 찻값을 치룰 수 있으면 최소한의 자격은 된다. 교양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즉, 물질적인 것이 정신적인 것을 도와주는 형식을 취함으로서 그것을 더욱 강조하는 사회풍조인 것이다. 맛있는 커피를 굳이 그곳에서 마실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곳을 찾는 이유는 때깔이 고운 것이 맛도 좋다는 스스로에게 인식된 고정관념 때문일게다.
나는 요즘 어머님을 찾아뵙는 빈도수가 예전에 비해 상당히 줄어들었다. 핑계는 먹고살기 위해서다. 건축 경기가 엉망이다 보니 건축설계를 해서 먹고사는 나로서는 그 많은 회사 구성원들을 책임지기가 버겁다. 현실이다. 당장 벌지 않으면 많은 식구들이 어렵게 된다. 여유가 없다. 예전 같으면 음악도 듣고 좋은 장소 찾아다니며 스케치도 했는데 지금은 어림 없다. 그러다 보니 가까이 계신 어머님조차 순간순간 잊고 산다. 참 한심한 속물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으실거다. “애비가 얼마나 바쁘면 연락조차 못할까?”
문득 생각이 나서 전화기를 든다. 어머니, 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애비야 밥은 먹고 다니니. 끼니 거르지 마라. 건강해야 이겨낸다. 네가 약한 모습 보이면 직원들 마음은 어떻겠냐. 특히 아무리 어렵더라도 형제지간에 사이좋게 지내도록 해라. 집이나 나라나 경제가 어려우면 이런 저런 불상사가 일어나고 불협화음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럴 때 일수록 서로 격려하고 화목하게 지내도록 해라. 네가 중심을 잡지 못하면 큰일 난다.” 숨도 쉬시지 않고 마치 전화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씀 하신다. 늘 가슴이 찡하다. 물질적인 세상에 젖어있던 내가 잠시나마 뒤를 돌아보고 진정 내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상기시키는 시간이다. 어머님 말씀을 듣고 나면 순간 축 처져 있던 몸에 힘이 솟고 잃었던 용기가 다시 돌아온다. 나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공기와 같은 존재이시다. 물리학적으로 본다면 약 78%의 질소(N2)와 약 21%의 산소(O2), 그리고 약 1%의 아르곤(Ar) 그리고 미량의 수소(H2), 네온(He), 헬륨(He), 크립톤(Kr), 크세논(Xe)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공기의 구성요소가 어떠하든 공기는 나에게 가슴 벅찬 어머니의 기억으로 돌아온다.
며칠 전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다. 온 국민들은 슬픔 속에 가신님의 영면을 바랐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 합니다”. 그분은 국민에게 공기 같은 분이셨다. 지금 그분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김동훈 ㈜진우 종합건축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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